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간 시점인 2일 서울대 총학생회는 또다시 구성되지 못했다.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해 11월 총학생회 선거가 선거관리위원의 투표함 사전개봉 의혹과 선관위 사무실 도청 파문으로 얼룩지자 선거를 무효화하고 12월 재투표를 했다. 재투표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자 학기가 바뀐 지난달 세 번째 선거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도 총유권자 1만6640명 중 8254명(49.6%)이 투표에 참여해 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되고 말았다. 서울대 총학생회 회칙은 투표율이 절반을 넘어야 총학생회가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선거 무산 결정을 두고 선관위 내에서 논란도 있었다. 투표 개시 직전인 지난달 19일 기준으로는 투표율이 50%에 못 미치지만, 투표 종료 이후인 지난달 30일 기준으로는 추가로 휴학한 학생들이 있어 투표율이 절반을 넘는 만큼 총학생회 구성을 선언하자는 의견이었다. 이를 둘러싸고 밤샘 논의가 이어졌다. 선관위원들이 대거 사퇴하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선관위원들은 투표 개시 직전의 선거인 명부를 사용한 관례에 따라 투표율은 미달됐으며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고 2일 최종 결정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투표율 미달로 해를 넘겨 새 학기에 재선거를 치른 것은 2003, 2005, 2006년에 이어 벌써 네 번째다. 서울대가 총학생회를 구성하지도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서울대 학생들은 처음으로 총학생회 없는 1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1984년 군사정권의 산물인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총학생회가 부활하면서 서울대 총학생회는 한국 학생운동의 핵심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운동에 적잖이 기여했다. 총학생회 선거 때마다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후보들이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수백 명의 선거운동원들이 세몰이를 하는 화려한 시절도 있었다. 운동권 학생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성원을 보냈기에 투표율이 문제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뤄지고 세상이 변하면서 대학에도 탈(脫)정치의 거대한 바람이 불어 닥쳤다. 비(非)운동권 총학생회장이 등장하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이번 재선거 과정에서 각 선거운동본부의 총학생회 구성을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에는 투표시한을 야간까지 연장하고 지방 출신 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대 인근 하숙촌을 돌며 투표를 독려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외면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시대의 변화 앞에 기존의 사고의 틀을 뛰어넘는 서울대 학생들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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