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망각 속의 북한 테러

  • Array
  • 입력 2010년 5월 3일 20시 00분


‘천안함 46용사’는 떠났지만 거리에는 ‘우리의 영웅들을 잊지 않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모두들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지만 당장 지방선거 바람부터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북한 정권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테러에 개입해왔다. 그들의 대남(對南)테러는 무려 470여 건에 희생자도 약 4000명에 이른다. 그중 최소한 4건은 대한민국 국가원수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았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햇볕정책에 눈이 부셔 북을 ‘정상국가’로 착각했다. 두 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테러 총책’과 손을 맞잡았다. ‘손 씻고 착하게 살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는데 면죄부를 줬다.

북한 군사전문가 조지프 베르무데스는 이미 20년 전에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면 대외정책 수단으로 정치적 테러리즘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적중했다. 대남테러 전력을 보면 북을 천안함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범죄 수사에서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를 용의자로 보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도 천안함 사건에 북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척하며 한 신문에 글을 쓰는 외국 출신 교수는 무죄추정원칙을 들먹이며 북을 비호했다. 일부는 그걸 대단한 논리인 양 복창한다. 언론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죄추정원칙을 지키려면 대법원 확정 판결 전까지 모든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야 한다. 스폰서 검사들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들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비난해선 안 된다. 정말 그래야 하고 그게 가능한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고 영웅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관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북의 대남테러와 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에 무심했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파와 1987년 대한항공 858기 공중 폭파는 가장 충격적인 북의 테러 사건이다. 두 사건의 기념물이 국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웅산 사건 희생자 17명의 충혼탑은 경기 파주 임진각에, 대한항공 사건 희생자 115명의 위령탑은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있다. 최근 찾아간 두 기념물은 모두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임진각과 양재 시민의 숲에는 가봤지만 그런 기념물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두 기념물 앞의 화병과 향로는 모두 텅 비어 있어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해군은 천안함 기념관을 경기 평택 제2함대사령부 내에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그곳도 의미 있는 장소지만 ‘46용사’들을 위해 눈물 흘린 국민이 찾아가기 쉽고 오래 기억하려면 수도 중심에 세워야 한다. 미국 수도 워싱턴은 한국전을 비롯해 미국이 참전한 거의 모든 전쟁과 참전자들을 기리는 기념물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북의 대남테러 희생자들의 흔적은 저 웅장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전쟁기념관에 대남테러 역사를 보여줄 전시관을 따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꽃밭과 스케이트장을 번갈아가며 만드느라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고 말도 많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테러 희생자 기념비를 세우고 희생자 이름을 계속 새겨가는 건 어떤가. 그걸 공약하는 서울시장 후보는 없을까.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