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생, 받아적기 바빠 질문할 생각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4일 03시 00분


해외석학들이 본 WCU사업
한국연구재단 주최 간담회

과학회의-주요 저널 모두 영어 쓰는데 원서 보는 학생 적어
WCU 기간 5년으로는 연구에 한계… 10∼20년으로 늘려야

《국내 대학들이 발표하는 장기 발전 계획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는 ‘세계화’다. 20∼30년 후 세계 50위 또는 100위 대학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지 않는 대학이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해외 대학과의 경쟁은 이제 생존을 위한 숙명이 되고 있다. 정부도 2008년부터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사업을 가동하며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 석학들의 눈에 비친 한국 대학의 현주소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박찬모)이 지난달 28일 주관한 ‘WCU사업 해외 학자와의 간담회’에서 해외 석학들은 한국 대학교육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줬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윌리엄 행콕(66·미국), 쿠르트 게켈러(62·독일), 데이비드 마크 헬프먼(57·미국), 라우프 부타바(44·알제리), 조너선 캠펠 노웰스(44·영국) 교수로 모두 지난해부터 WCU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내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해오고 있다.

▽부타바=한국에서 대부분의 가르침은 매우 설교적이다. 내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내용을 받아 적고 파워포인트 자료를 내려받는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만 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게켈러=생각하는 방법에서 동양과 서양은 다르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기초사고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받는다. 동양 사고와 서양 사고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과학에서 기초사고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경영 분야의 경우 독일에서 처음 팩스가 발명됐을 때 일본인들이 했던 것처럼 기술을 복사할 수 있다. 일본은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기초적인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과학이 더 우수해지려면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말하고 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헬프먼=한국 학생들의 높은 자질과 열심히 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한국 학생은 영어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영어로 하는 과학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꺼리고 내 연구실에서 나와 대화하는 것도 꺼린다. 하지만 학생들이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영어는 과학과 기술의 주(主)언어가 됐다. 오늘날 모든 학문의 주요 저널은 모두 영어로 돼 있다. 따라서 한국 교수들은 학생들이 원어 문헌을 직접 읽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학생은 나에게 공식수업에서 원어로 된 과학 논문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화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외국어를 배우라고 자주 말했다. 한국의 경우 학교 커리큘럼에 영어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장벽을 없애는 것은 외국 학자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도 매력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게켈러=한국 학자들도 국제회의와 국제적인 연구프로그램, 공동연구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 한국의 학문 수준은 훌륭하다. 그러나 한국 학자와 한국 학문은 국제적인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국제 교류를 늘리기 위해서는 개선할 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처리 방식이다. 국제적인 학자들은 국제회의가 열리기 1∼2년 전에 이미 회의 참석 약속을 한다. 하지만 한국 연구기관들은 회의가 2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참석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모습이 국제적으로 한국 학자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한국의 모습은 붕괴되기 전 소련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다.

▽행콕=한국 대학이 국제 수준의 대학이 되고 학문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미국의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와 같은 해외 대학과 제휴해 교수와 학생들을 교환하는 유연하고 국제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노웰스=동감한다. 내가 WCU 프로그램에 참여해 한국에 오게 된 데에는 편의시설보다는 오랜 기간 공동 연구를 해온 한국 교수와의 개인적 교류가 컸다. 또 교수와 학생들이 흥미롭고 독창적인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허용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부타바=한국 대학은 발표되는 논문의 수보다는 논문의 영향력에 더 집중해야 한다. 논문의 영향력을 높이려면 독창성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WCU 프로그램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게켈러=하지만 WCU 프로그램은 본질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에서 1년 동안 약 40명의 학생을 받아들였다. 전형적인 박사과정의 기간은 4년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5년 동안 진행된다. 올해 들어오는 학생들은 박사 과정을 마치는 것도 힘들다. 학생들이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을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WCU와 같은 프로그램은 적어도 10년 2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상황에서 5년 후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인 평판에 재앙이 될 것이다. 또 이것은 ‘한국은 세계 수준 대학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할 수 없었다’고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정부의 계획대로라면 5년 후 WBC프로그램은 소멸될 것이다. 그럼 5년 동안 WCU에 사용된 자료는 모두 쓰레기가 될 것이다.

정리=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사업:


우수한 해외 학자 유치를 통해 대학의 교육 연구 풍토를 혁신하고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는 사업으로 2008년부터 5년간 8250억 원이 투자된다. 지난해 10월까지 3개 유형과제에 345명의 해외 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윌리엄 행콕
전공-기능성 단백체학
원 소속대학-노스웨스턴대
WCU소속대학-연세대

쿠르트 게켈러
전공-의학, 화학
원 소속대학-전(前) 에버하르트카를스대
WCU소속대학-광주과학기술원

데이비드 마크 헬프먼
전공-암생물학
원 소속대학-마이애미대
WCU소속대학-KAIST

라우프 부타바
전공-네트워크 관리
원 소속대학-워털루대
WCU소속대학-포스텍

조너선 캠펠 노웰스
전공-생체재료, 조직공학
원 소속대학-런던대
WCU소속대학-단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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