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5단체 중 한 곳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난관에 부닥쳤다. 차기 회장을 맡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는 탓이다. 2일에는 이희범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추대한다고 언론에 발표까지 했다가 정확히 두 시간도 안 돼 거절당했다. 공개청혼을 했다가 ‘공개퇴짜’를 맞은 셈이다.
1970년 설립된 경총은 40년간 재계를 대표해 민감한 노사문제를 맡아 왔다. 이 때문에 경총 회장은 한국 사회의 척박한 노사현실 속에서 때로는 악역을 해야 했다. 모두가 경총 회장을 기피해 재계에선 ‘3D업종’으로 꼽히기도 한다. 출범 40년 동안 역대 회장이 4명에 불과한 것도 후임자가 나서지 않아 ‘비자발적 장기집권’이 관행처럼 굳어진 탓이다.
전임 회장들 역시 여러 번의 고사 끝에 회장직을 수락하곤 했지만 이번에 경총이 느끼는 위기감은 다르다. 올 2월 이수영 경총 회장(OCI회장)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로 회장직은 사실상 3개월째 공석 상태다. 회장 추대위원회가 꾸려졌지만 회장단의 오너들 모두 손사래를 치면서 결국 전문경영인인 이희범 회장에게 공이 돌아갔다. 관료 출신인 데다 오너도 아닌 이희범 회장이 추대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앞서 경총은 지난해 12월 30여 년 동안 회원사였던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탈퇴로 위상에 흠집이 났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골자로 한 노동조합법 개정 논란이 첨예하던 당시 현대·기아차그룹이 “경총이 회원사의 이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박차고 나가면서 경총의 역할론이 도마에 올랐다. 이처럼 최근엔 노사문제에 있어 대기업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경총 회장 자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경총이 풀어야 할 현안은 산적해 있다. 우선 올 7월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개정 노조법이 시행된다. 내년 7월부터는 복수노조가 허용돼 노사관계에 큰 진통이 예고된 상황이다. 기업에 따라 다른 이해(利害)로 갈등을 빚는 업계를 아우르는 조정 기능도 경총의 몫이다. 경총이 위상을 재정립해 노사문제를 대표하는 경제 5단체로서 역할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법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지만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경총이 역량을 강화해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능한 회장을 하루빨리 선임해야 한다. 경총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핵심 주체다. 난항을 겪고 있는 경총의 신임 회장 선정 문제는 경총만이 아닌 재계 전체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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