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형주]수학 김연아, 물리 사라 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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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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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겨울올림픽을 보며 온 나라가 들썩이던 게 엊그제다. 우리 젊은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던 국민의 관심이야 그렇다 쳐도, 겨울이 짧은 한국의 빙상이 그런 국제적 관심을 받다니 참 놀랍다. 뭔가 합당한 설명이 있을 법한데 엘리트체육과 국민체육의 상관관계로 들여다보자. 재능 있는 선수를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엘리트체육 정책의 공과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일본처럼 국민체육을 상대적으로 중요시하는 정책을 올림픽 메달 수가 적다고 폄하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김연아의 탄생을 체감하는 이유는 그가 ‘가능함’의 기준을 바꾸어 버린 때문이다. 국민체육 진흥의 효과까지 있어서 스케이트를 친근하게 여기고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김연아가 뉴욕타임스 지면을 도배하고 세계 명사의 찬사를 듣는 일 이상의 중요한 효과일지 모르겠다.

스포츠 문외한이 겨울올림픽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 교육이 참고할 만한 시사가 있어 보여서다. 사교육 열풍이 사회문제가 된 현실에서 공교육 개혁을 통한 대책 마련은 물론 필요하다. 총명한 학생이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해 잠재력을 사장하면 국가적 불행이 되니까. 교육이 부와 신분을 세습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사교육 근절 위주의 최근 대책은 우려되는 면도 크다. 사교육 비용의 증가로 인한 학부모의 근심이야 왜 모를까만, 이 와중에서 수학의 김연아와 물리학의 사라 장이 질식할까 걱정된다.

세기의 천재인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제안한 뒤 몇 세기에 걸친 과학자의 후속 연구로 행성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인공위성의 궤도를 계산해낼 수 있게 됐으며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핵분열 과정에서 질량의 감소가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음을 알아낸 뒤 여러 학자의 후속 작업으로 원자폭탄이 탄생하고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됐다. 앨런 튜링이 계산의 기계화에 대한 수학적 이론을 정립한 뒤 컴퓨터가 탄생하고 정보기술(IT) 시대가 열리며 20세기의 모습은 통째로 달라졌다.

그래서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과학의 발전은 연속적인 향상의 과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큰 틀의 진보와 작은 틈새를 메우는 정상과학기로 구분된다는 설명이다. 세계관의 변화를 유발하는 과학계의 화두가 천재의 출현으로 해결되면 옛 질서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이 거대 담론의 틀 안에서 지속적인 향상의 과정이 일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는 걸맞은 교육이 필요하다. 공교육을 통해 과학적 소양을 가르치는 일과 함께 영재교육도 포기할 수 없다. 요즘에는 여러 올림피아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사실이고 노력과 훈련으로 어느 정도의 성취가 가능한 분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 분야 같은 경우 속성상 훈련으로 도달할 수 없는 천재성의 영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주요 수학업적이 젊은 수학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 천재성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발굴의 개념은 훈련의 개념과는 다른데, 최근의 정책적 방향은 발굴의 기회를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 빙상 사교육이 염려되면 어린 김연아가 천재성을 증빙하며 데뷔할 수 있는 빙상대회를 없애버리면 된다. 그랬다면 우리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간간이 지켜보았을지 모른다. 성취가 새로운 동기가 되는 우리의 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튜링에게는 신나게 놀며 자기 재능을 나타낼 수 있는 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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