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 워런 버핏, 골드만삭스를 편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예전부터 한국에 ‘밭떼기’라는 것이 있었다. 농작물이 다 자라기 전에 밭째 사고파는 것이다. 밭떼기는 농부나 바이어 중 한 사람이라도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성사되지 않는다. 농작물이 다 자라는 건 미래라서 그때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농부는 나중에 가격이 떨어질지 모르므로 미리 적정한 가격에 몽땅 파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바이어는 나중에 가격이 폭등하거나 모자랄 수 있으니 미리 몽땅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 거래가 이뤄진다. 어느 해에는 농부가 시장가격보다 높게 팔고, 어떤 해에는 싸게 팔 것이다. 양쪽 다 일부 위험을 감수하지만, 그 대신 자신한테 유리한 점이 있으니 매매를 한다.

밭떼기는 초보적인 파생상품(Derivatives)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도 밭떼기처럼 양측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가격이 내리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올라가리라 생각하니까 거래가 이뤄진다.

환 헤지(hedge·위험분산) 파생상품 ‘키코(KIKO)’를 둘러싼 소송들 가운에 얼마 전 본안 판결이 하나 나왔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키코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기업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은행 측 손을 들어줬다. 키코에 대한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2008년에도 요즘처럼 환율이 떨어졌다면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은 피해를 보기는커녕 되레 이익을 봤을 것이다.

최근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골드만삭스를 100% 신뢰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투자자에 대한 사기 혐의로 제소됐다. 2007년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기초로 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팔면서 중요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정보란 상품을 설계한 세계적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 씨는 주택시장이 나빠질 것을 알고 역베팅해 10억 달러를 챙겼으나 투자자들은 이를 모르고 투자해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중간에서 수수료 1500만 달러를 챙겼다.

이에 대해 버핏 회장은 “투자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투자은행이 고객에게 자신의 포지션을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다”며 골드만삭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2008년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해 매년 5억 달러 이상의 배당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편들기가 이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투자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온 문제로만 본다면 이번 제소는 “말도 안 된다”는 분위기다. 우선 피해를 봤다는 투자자들이 개인 투자자나 제조업체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금융회사들이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위험을 분산하고 관리하는 것이 이들의 업무인데 한 상품에서 손해를 봤다고 ‘사기’ 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또 상품을 판매할 당시에는 주택시장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는데 누가 누구를 속이느냐고 반박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 한국의 금융제도나 시장현실에서는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것 같은 합성 CDO가 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한국의 피해가 비교적 적은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영국처럼 고도의 금융시장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더라도 ‘모르는 게 약’이라며 넋 놓고 있다가는 과거 외환위기나 키코처럼 앉아서 당할지 모른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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