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양]자유를 바란다면 그들을 기억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육군 중앙신원확인소(CILHI) 건물 입구에 있는 글귀다. 미국은 1976년 세계 각국의 전쟁터에서 실종된 미군 포로와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구촌 끝까지 찾아가서 전쟁영웅을 모셔온다. 맹세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천안함 용사들의 영결식이 전 국민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는 많다. 희생 장병과 실종자를 구하려다 산화한 한주호 준위의 희생정신은 군인정신의 가장 높은 경지다. 그들은 살신성인의 자세를 온 국민의 가슴속에 새겨놓고 떠났다. 희생정신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야말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과 기여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감사하면서 후손에게까지 전해야 한다.

보훈이라고 하면 흔히 국가유공자를 위한 일정액의 보상금 지급과 의료지원, 학비보조 등 물질적 지원과 사후 국립묘지 안장을 전부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보훈의 참뜻은 오늘을 사는 우리와 후손이 이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하고 선양하여 국가발전의 정신적 에너지를 결집하는 데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을 제대로 평가하는 사회가 진정으로 정의가 살아 있는 곳이다. 국가에 대한 공훈과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과 국민적 예우가 뒤따를 때 병역비리 등 도덕적 해이현상이 줄어들고 국가공동체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 국가보훈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선진일류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모두가 보훈의 의의와 중요성을 재인식하여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을 존경하고 예우하는 사회적 풍토가 하루빨리 정착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함은 수많은 희생의 결과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스스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용기 없이는 아무것도 누릴 수 없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목숨을 아낌없이 희생하신 분이 많다. 조국 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한 호국용사,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민주유공자, 베트남전에 참전한 유공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한 분의 공훈을 기리고 감사하는 일에 인색했다. 이런 분들을 국가가 보살피고 예우하는 한편 국민으로 하여금 그분들을 본받아 애국하는 것이 숭고한 일임을 일깨우는 제도는 현대에 와서 생긴 것이 아니다. 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한 제도다. 국가와 민족이 존재한 이상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보훈제도는 존재했다.

선진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확고히 뿌리내린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국가유공자를 최우선으로 예우하는 국민정신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공훈을 세웠거나 희생한 분을 예우하고 존경하는 일은 공통된 사항으로 국가의 기본책무이자 국민 된 도리로 여겨왔다. 선진국일수록 나라를 이끄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다. 애국지사를 비롯한 국가유공자가 제자리에 바로 서지 않고서는 국민의 가치관도 사회 정의도 바로 설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통해 애국심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이 다 같이 나라 위해 희생한 분을 존경과 예우로 보답하는 보훈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다.
김양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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