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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1일 개막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의 TV 중계가 SBS 단독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조치에 따라
KBS MBC SBS 3개 지상파가 벌인 월드컵 중계권 재판매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중계권을 선점한 SBS는 4일 자사(自社)
뉴스를 통해 ‘단독 중계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은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이어 남아공 월드컵도 1개 지상파의 단독 중계로
관람하게 됐다.
월드컵 중계 싸움에서 드러난 실상
SBS의 월드컵 중계권 선점행위를 놓고 상호 비방전이 벌어졌다. KBS MBC는 SBS가
공동구매 합의를 깼다며 ‘약속 위반’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이전에 KBS와 MBC도 스포츠 중계와 관련한 약속을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논란의 핵심은 월드컵 같은 국민적 이벤트를 한 방송사가 중계해야 하느냐, 아니면 여러 방송사가 공동 중계해야
하느냐에 있다.
개인적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처럼 지상파 3사가 같은 경기를 동시 중계하는 것에는 반대다.
어느 한 방송사가 맡아 중계하고 다른 방송사는 정규 편성을 해야 한다. 축구 말고 다른 프로그램을 보려는 시청자의 권리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열린 한 달 내내 축구중계만 틀어댄 것도 무척 짜증나는 일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3개
지상파가 순번을 정해 중요 경기를 돌아가면서 중계하고, 과도한 편성을 자제하는 일이다. 하지만 일단 대회가 시작되면 ‘신사협정’이
통할 리 없다. 이번처럼 한 방송사가 단독 중계하는 방식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방송을 둘러싼 다툼이 늘
그렇듯이 이번 논쟁에서도 지상파는 현학적인 어휘를 앞세워 정당성을 호소했다. ‘보편적 시청권’ ‘채널 선택권’ ‘해설자 선택권’ 등
알 듯 모를 듯한 단어들이 동원됐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보면 우리 지상파가 지닌 속물적 본능이 바로 드러난다.
지상파에서 후발주자인 SBS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6년 여름올림픽 중계권까지 입도선매를 한 것은 기존의 지상파 판도를
깨기 위한 나름의 승부수라고 볼 수 있다. 대형 이벤트를 주도함으로써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려는 계산이다. KBS MBC가 각종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역시 본질적인 것은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큰 장’을 내줄 수 없다는 상업주의와 ‘기득권 지키기’이다.
KBS 등의 대응은 원색적이고 노골적이었다. 두 방송사는 SBS에 대한 민·형사 소송 제기를 공언했고 자사
뉴스로 여러 차례 SBS를 비난했다. 특히 KBS의 상실감이 큰 듯하다. 김인규 KBS 사장은 “SBS의 겨울올림픽 독점중계를
보면서 울분을 삼켜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자세는 우리 공영방송들이 상업방송과 별 차이 없이 눈앞의 이익 추구에 급급해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공영방송은 품질로 승부해야
공영방송의 역할은 방송계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더 강조되고 있다. 저질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가운데 공영방송은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 모범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해 ‘청정(淸淨) 지대’를 형성할 의무가 있다. 스포츠
중계를 상업방송에 빼앗겼다고 해서 발을 구르는 모습은 공영방송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KBS는 수신료
인상이라는 난제(難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공영방송에 걸맞은 고품질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제공하려면 광고를 없애는 대신에
수신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KBS는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업계 1위’로서 외형에
매달려온 접근 방식을 버리고 방송의 품질로서 승부해야 한다. 국민은 진정한 공영방송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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