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민소환 조작’ 민주주의 흔드는 악질 시민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7일 03시 00분


지난해 해군기지 건설에 동의한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청구 서명부의 33.6%가 서명 조작 등으로 무효판정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심사한 결과 2007년 김황식 하남시장, 2008년 이연수 전 시흥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청구 서명부의 각각 42.4%, 25%가 가짜였다. 시민단체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밝혀낸 사실이다. 주민소환을 추진한 세력이 주민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서명까지 위조한 것이다. 제주도와 하남시의 경우 주민소환의 명분이 떳떳하지 못했고 수단도 불순했던 것이다.

제주도와 하남시는 무효서명을 뺀 청구인 수가 정족수를 넘어 투표를 실시했으나 투표자 수 미달로 부결됐다. 2008년 9월 이 전 시흥시장에 대한 소환 투표 청구에서는 25%의 서명이 무효처리돼 아예 투표를 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법률에 따라 가짜 서명에 대해 무효조치를 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안이한 대응이다.

타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서명을 위조한 것이 주민등록법 위반 또는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제주도에선 해군기지반대대책위를 비롯한 주민소환운동을 벌인 시민단체에 의심의 눈길이 가고 있다. 하남시도 소환운동을 추진한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명단과 서명을 도용당한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비리 무자격 지자체장을 소환하기 위해 제정된 주민소환제는 당초 취지와 달리 지역이기주의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자치단체장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되고 있다. 주민투표로 인한 행정공백, 예산낭비, 주민분열 같은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절차를 훼손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혼란에 빠뜨리는 짓이다. 국회는 주민투표법을 개정해 가짜서명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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