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업을 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최근 외국 바이어를 초청해 국립암센터에서 입원 검사를 받게 했다. 의료보험 혜택이 없어 수백만 원의 비용이 나왔지만 바이어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저렴하고 서비스도 좋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일부 대기업은 해외 거래처에 골프나 술자리 같은 구태의연한 접대 대신에 종합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의료관광 전문회사의 안내를 받아 입국하는 외국인 환자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작년 한 해 동안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환자가 당초 목표인 5만 명보다 1만 명 이상 많은 6만201명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2008년 2만7480명에 비하면 불과 1년 만에 2배가 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은 셈이다. 작년 5월 의료법 개정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가 가능해지면서 외국인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규제를 완화하고 의료시장을 개방해 첨단장비와 의술을 갖춘 병원이 늘어나면 외국인 환자가 더 많이 오고 의료 관련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복지부는 투자개방형 병원의 허용을 반대한다.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조달해 병원을 운영하고 투자수익을 돌려주는 주식회사형 병원은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지만 의료법이 이를 금지하고 있다. 복지부의 반대 이유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생길 경우 의료인력이 몰려 건강보험 환자들에 대한 공공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국민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공공의료 근본주의’에 밀려 의료관광 업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복지부는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면서 의료관광도 발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 중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네덜란드 등 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 일본은 의료 간병 건강 관련 산업을 신성장전략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대대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일본의 정책 변화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제조업 위주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의료서비스 산업을 중점 육성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싱가포르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이다.
싱가포르는 1980년대에 투자개방형 영리 병원을 도입해 국공립 비영리병원과 영리병원이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싱가포르를 찾은 의료관광객 수는 2000년 20만 명에서 2007년 46만 명으로 늘어났다. 의료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2000년 2만6000명에서 2007년 5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의료관광의 활성화에 힘입어 제약 등 바이오 산업도 동반 성장 효과를 거두고 있다.
투자개방형 병원을 만든 뒤에도 수준 높은 의료인력을 확보하고 의료 분야의 규제를 풀어 시장경쟁을 강화해야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의료관광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다. 물론 외국인 환자에 밀려 국내 저소득층이 기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탄탄히 정책설계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