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준혁]중국은 아직 매력적이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4일 03시 00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왔다.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정치이론가들이 모여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중국의 정치개혁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 자리였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학술대회는 중국 정부의 홍보 수단에 불과했다. 인권탄압이나 권위주의적 통제에 대한 국외로부터의 비난을 잠재우고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과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외국 학자를 초청했다. 이번 경우는 달랐다. 무엇보다 서양 학자들 스스로가 중국의 정치개혁에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필자에게 중국식 통치 모델에 대한 서양 학자들의 기대는 몇 가지 측면에서 불편했다. 무엇보다 중국식 ‘일당체제’나 ‘권위주의적’ 통제가 용인되는 전통이나 문화가 동아시아에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이 의아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가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아시아적 가치’나 ‘유교적 전통’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다. 몇몇 학자는 ‘권위주의적 협의’라는 표현을 통해 공산당의 후견적 통제를 중립적 조정으로 묘사하거나 ‘자문형 법치’라는 말로 공산당의 초법적 개입을 옹호하는 중국학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동아시아를 서구 중심의 시각으로 보지 않으려는 서양 학자의 노력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를 특정 전통이나 문화로 국한한다든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윤색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아시아에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공존한다. 서양의 문화를 기독교라는 단일 잣대로 이해할 수 없듯이 동아시아에서의 삶의 양태도 유교 문화권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한 역사적 변용과 다양한 문화적 결합의 결과물이다. 유교조차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내용을 갖게 됐고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통해 여러 형태로 변형됐다. 중국에는 민주주의를 개발하거나 수용할 수 없는 독특한 토양이 있는 듯 상정하는 것 자체가 내재적 결함을 갖는다.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는 모순

또한 중국식 모델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듯이 속단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아테네 민주정 이후 민주주의는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각 나라는 자신들의 삶의 양식에 맞는 토착적 형태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서로의 경험을 거울삼아 제도를 모방하고 창조한다. 따라서 중국이 자기만의 민주주의 모델을 구상하는 것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중앙 정치에서 행하는 공산당 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제를 민주주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새 형태라고 단정하거나 중국 정부의 입장을 일반 시민까지 납득하는 듯이 전제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엄격한 절차가 빚어내는 부정의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 지도자에게 일정 정도 재량을 허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모순된 표현이 성립된다. 평등한 시민 사이의 심의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에서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지도자의 설득이 용인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는 권위와 엄격히 구분된다. 전자가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의 의견이나 법적 제한과 무관하다면 후자는 위계적 힘의 행사에 대한 상대방의 동의와 법적 근거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모순어법은 성립될 수 없다.

중국이 진정 매력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우선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시민이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저항할 힘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시민적 견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중국식 민주주의는 또 다른 유형의 권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는 정치체제의 정당화를 넘어선 지구적 차원의 규범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해법에 골몰하면서 세계인을 설득하기보다 중국이 지향하는 바가 곧 인류 공영의 좌표로 논의되고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의 정치개혁은 권위주의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로마 제국 아닌 공화국 꿈꾼다면

지금 중국은 비강제적 외교력을 강화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강대국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소프트파워 외교가 여러 면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 받는 인상은 ‘로마 제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영광을 빌미로 시민의 자유를 비정치적인 것으로 국한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로마 제국은 최강국의 영광을 누렸지만 로마 공화국이 향유했던 도덕적 위엄과 시민적 품위를 이웃나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로마 제국이 아니라 로마 공화국을 꿈꾼다면 시민적 견제력과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좀 더 적극적인 정치개혁을 진행시켜야 한다. 이런 고려가 없다면 성장과 영광에 가려진 시민적 삶의 질곡과 무분별한 국익의 추구가 중국의 장래를 크게 위협할 것이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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