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이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 천안함 실종자를 구조하려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 “잘못된 약속도 막 지키려고 하는 여자가 있는데 누군지 아시느냐”고 실언을 해 친박계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기에 이르렀다.
정 총리는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참으로 딱한 변명이다. 일국의 총리가 이토록 말을 가릴 줄 모른다니 듣기 민망하다. 그의 설화(舌禍)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정 총리는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일본 731부대를 아느냐”는 질문에 “항일독립군”이라고 답변해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이의 수준을 의심케 했다. 올 1월에는 독신으로 4선이던 야당 의원의 빈소에서 고인을 기혼의 초선의원으로 알고 무신경한 말로 유족을 위로했다가 사과한 적도 있다.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 각부를 통할(統轄)하는 총리는 국정을 효율적 생산적 안정적으로 운영해 국리민복에 기여할 책무가 있다. 자신의 말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거나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다면 국정 수행이 출발선부터 삐거덕거리게 된다. 그런 만큼 총리의 한 마디 한마디는 정제되고, 무게가 있으며,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실언이 당사자는 물론 정권의 명운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많다. 최근 영국 총선에서는 고든 브라운 총리가 방송용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여성 연금생활자를 ‘꽉 막힌 여성’이라고 했다가 치명타를 맞았다. 2004년 총선 때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했다가 노인 폄훼 논란에 휩싸여 비례대표를 사퇴한 적이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나 정치인의 잦은 실언은 상황 판단 능력, 대중 설득력뿐 아니라 기본 자질 측면에서도 중대한 흠결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박 전 대표의 반대 때문에 세종시 원안 수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 총리는 ‘여자 발언’으로 세종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 셈이 됐다. 그가 총리에 취임한 지도 8개월이 지났다. 취임 초의 실수는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원숙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정 총리는 국민으로부터 총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 언행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자세를 가다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