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진주만의 반성, 천안함의 다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7일 20시 00분


미국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있는 ‘USS 애리조나 메모리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공격으로 침몰한 애리조나호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의 진주만 기습으로 희생된 2403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1177명이 이곳에 수장됐다. 물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조금씩 기름방울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참변의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937년 말 일본은 양쯔 강을 항해 중이던 미국 전함 파나이호를 격침시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선박 한 척 때문에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진주만 공습이 있기 약 1년 전, 일본 주재 미국대사 조지프 그루는 일본의 공습 가능성에 관한 소문을 본국에 타전했다. 미 첩보기관은 일본의 외교암호를 해독해 D―데이가 12월 7일로 잡힌 것도 파악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필리핀의 미군기지라면 몰라도 난공불락의 요새인 데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진주만을 일본이 공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자만과 잘못된 확신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다음 날,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에서 전쟁교서를 발표했다. “영원한 오명의 날로 기억될 어제 미합중국은 일본제국 해·공군의 기습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침략을 무찌르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미국 국민은 끝까지 싸워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잠자던 사자’ 미국의 처절한 반성이자 다짐이었다.

3·26 천안함 사건으로 46명의 우리 수병을 잃기 전까지 서해에도 숱한 공격 징후가 있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패배 이후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 운운하며 보복을 공언했다. 서해에서 훈련도 강화했다. 우리 군은 수심이 얕은 서해에선 북한 잠수정의 침투·기동이 쉽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대잠(對潛)능력의 90%를 동해에 집중했다. 서해는 바다 위만 경계하다시피 했다.

20일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에서 천안함을 공격한 범인이 북한으로 드러나면 우리는 한 덩어리로 응전(應戰)할 수 있을까. 제 나라 전함이 격침된 지 50일이 넘도록 여야 공동결의안 하나 못 낸 곳이 명색이 대한민국 국회다.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은 엊그제까지 “정부가 명확한 근거도 없이 북의 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펄펄 뛰었다. 그러다가 돌연 “북의 개입이 확인될 경우 허를 찔린 군통수권자(대통령)가 책임져야 한다”고 선수(先手)를 쳤다. 주거침입 살인사건을 당했는데 가해자만 감싸다가 ‘스모킹 건(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 드러나자 “왜 막지 못했느냐”며 가장(家長)만 탓하는 격이다. 아예 정부 발표는 인정할 수 없다며 국회가 주도하는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2002년 효순·미선 양 사건 때,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촛불 들고 반미구호 외치던 세력이 천안함 테러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는 안 한다. ‘별놈의 증거를 다 갖다 대도’ 북한은 감싸 안아야 할 동지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세력은 반(反)통일세력쯤으로 폄훼하는 세력이 활개 치는 나라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에서 안보의 발목을 잡는 좌파정권 10년의 적폐를 극복하고,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헌법 66조)가 있다. 북한이 도발을 후회하고 재범의 엄두도 내지 못하게끔 확실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것이 531만이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나라를 맡긴 절대다수 국민의 지상명령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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