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종석]돌아온 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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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9일 03시 00분


“세리 모자에 쓴 로고가 뭔지 아니.”

국내 대형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실장으로 일하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박세리(33)의 모자에 적힌 ‘온다 도로(ONDA D'ORO)’의 의미가 궁금해서였다. 메인 스폰서가 없는 박세리는 올 시즌 초부터 이 로고를 붙이고 출전했는데 그동안 성적 부진으로 국내에 거의 노출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17일 끝난 벨마이크로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TV 전파를 많이 타 호기심을 자극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누리꾼 사이에는 ‘도로 온다’는 뜻으로 자신의 재기를 다짐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는 “1998년부터 후원해 준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이 만드는 최고급 와인 이름인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쓴다”고 설명했다.

꿈보다 해몽 격이긴 했어도 박세리가 말 그대로 돌아왔다. 2년 10개월간의 오랜 침묵을 깨고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연장전 불패의 신화도 이었다. 통산 25승이나 거둔 그였지만 보기 드물게 눈물을 쏟았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울먹거리며 말을 더듬을 만큼 감격스러워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팬들도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게다.

박세리가 누구인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 끝에 정상에 올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노래를 배경으로 공익광고에 나오던 새하얀 맨발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승승장구하며 세계 정상급 골퍼로 발돋움한 그는 취재가 힘들기로도 유명했다. 금의환향을 하면 공항에는 새벽 4시든, 밤 10시든 수백 명의 취재진과 경호요원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박세리가 공중목욕탕 갔다’는 내용도 기사화되던 때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슬럼프 속에서 부침을 되풀이하다 2007년 7월 우승을 끝으로 3년 가까이 무관에 시달렸다. 처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지 10년이 된 2008년 여름 국내대회 출전을 위해 박세리가 귀국했을 때 공항에 취재 나온 기자는 필자 한 명밖에 없었다. 배고프다며 분식집을 찾은 그는 라면부터 주문하고는 “설익어 꼬들꼬들한 면발이 좋다”고 말문을 연 뒤 인기의 덧없음, 정상의 추억 등에 대해 실컷 수다를 떨었다.

한국 골프의 개척자였던 박세리. 1998년 그가 홀로 진출했던 LPGA투어에 올해 한국 선수만 40∼50명이 뛰고 있다. 박세리가 길을 연 덕분이다. 하지만 이 중 쓰라린 실패를 겪고 국내로 돌아오거나 아예 골프를 관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투어 18개 대회 우승자의 평균 연령은 20.9세에 불과했다. 30대 우승자가 나온 것은 2003년 하이트컵 레이디스가 마지막이었다. 후배들에게 떠밀려 의욕을 잃거나 힘든 운동 대신 다른 쉬운 일을 찾는 것도 선수 수명의 단축을 불렀다.

이런 분위기가 오직 필드에만 국한된 일일까. 둘러보면 급속한 변화와 거센 세파에 휘말려 잔치를 끝낸 것처럼 고개 숙인 세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세리 역시 한물갔다는 평가 속에서도 영광 재현을 다짐하며 땀을 쏟았다. 자신의 영향으로 골프에 매달린 ‘세리 키즈’에게 자극받아 이번에는 자신을 채찍질했다. 꺼질 것 같던 촛불을 다시 태우기 시작한 박세리. 새로운 불꽃이 오래도록 주위를 밝혔으면 좋겠다.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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