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채권규모 상위 3개 은행인 산업은행 신한은행 농협은 현대와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기로 했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은 기업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돼 개선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현대는 계열사나 보유자산 매각을 통한 군살빼기와 유상증자 같은 자구노력에 나서야 한다.
현대의 재정 상태가 나빠진 것은 그룹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상선이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실적이 나빠진 탓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22개월째 중단된 대북사업으로 적자에 빠진 현대아산의 상황도 영향을 끼쳤다. 현대아산은 작년 한 해 동안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323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지금도 매달 20억 원가량의 손실이 계속되고 있다. 과거 사업 초기에 투자한 금액까지 감안하면 그동안 누적된 매출 손실은 수천억 원에 이른다. 현대아산과 협력업체의 동결된 자산도 3230억 원이나 된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합의로 시작된 사업이다. 북한은 현대아산에 2002년부터 2052년까지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을 부여했고, 금강산 관광이 2008년 중단될 때까지 10년 동안 4억8000만 달러를 챙겼다. 2008년 북한 초병의 관광객 박왕자 씨 살해로 중단된 것은 전적으로 북한 탓이다. 그런데도 북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에 있는 시설을 제멋대로 동결하거나 몰수했으니 정말 도리를 모르는 집단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은 투자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진다. 하지만 북한에 거액을 투자한 현대그룹의 재정 상태가 나빠진 데는 김대중 정부와 북한의 책임도 크다. 2003년 3월 대북 송금 특검에서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중 1억 달러의 대북지원금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현 민주당 원내대표)이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 대신 지급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 회장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현대 계동사옥 자신의 사무실에서 떨어져 숨졌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진된 대북사업의 비극과 손실은 기업들에 값진 교훈이 될 것이다. 국민적 합의 없는 정경유착에 의한 대북 퍼주기는 결국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군비 증강에 악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