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에 대한 인상은 한 사람이나 어떤 상황에 좌우되기도 한다. 기자가 20대 후반의 태국 기자 A 씨를 만난 것은 15년 전 아시아 기자 5명을 초청한 일본 오사카재단의 한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는 선한 인상에 예의도 바르고, 영어는 물론 일본어도 잘하는 젊은이였다. 그를 통해 듣던 대로 태국사람이 예의도 바르고, 국제적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태국 수도 방콕은 배낭여행을 하는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어떤 면에서는 서울보다 훨씬 국제화된 도시다. 친절도에서도 항상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몇 년 사이 잔뜩 성이 나 있다. 툭하면 국제공항이나 정부청사를 점거하거나 아시아정상회담장에 난입하는 등 국제뉴스의 단골이 됐다. 급기야 한 달 전부터는 쇼핑센터와 관청가들이 몰려 있는 방콕의 도심을 점거하면서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어제 강제해산 작전이 시작되는 시간 CNN은 시커먼 연기와 장갑차가 돌아다니는 장면, 군인들이 실탄을 쏘는 장면을 온종일 비춰줬다.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 이틀 전 시위대 점거지역을 르포한 후배 기자로부터 그곳 분위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거리에 마련된 연단에는 연방 사람들이 올라 현 정권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거나, 연단 부근의 사람들이 소위 운동권 노래를 부르며 단결을 다지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1980년대 서울의 시위현장을 보는 듯했다는 것. 시위대 수는 수만 명에서 5000명으로 줄었지만 열기는 뜨거웠다고 한다.
시위대 구성은 지역적이고 계층적이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로 대표되는 북부 치앙마이와 동북부 농촌지역 사람들과 도시 빈민층들이 주류다. 이른바 레드셔츠다. 이들은 오랫동안 억눌려오다 2001년 탁신 총리 집권 이후 달라진 대접에 환호했다. 탁신은 농가부채 탕감과 저소득층 무상의료 서비스, 무상교육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옐로셔츠 세력은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이라고 비난했다. 옐로셔츠는 왕족과 군부 등 지배세력들로 방콕과 해양을 기반으로 한다. 잘나가던 탁신의 부패문제가 불거졌다. 우여곡절 끝에 탁신은 해외로 망명했다. 꼭 2년 전 청백리로 불리던 참롱 스리무앙 전 방콕시장을 비롯한 옐로셔츠들이 청사를 점거하는 시위 끝에 탁신계 정당을 무너뜨렸다. 양쪽 정치 지도자들은 서로 자기 이익을 위해 대중을 이용했다.
번갈아 계속되는 시위 때문에 나라는 갈라졌다. 그 바람에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어려운 태국 경제에 그늘이 짙어졌다. 성장 동력이 약해지고 시위로 인한 직간접 손실이 7조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외 이미지가 실추되고 잠재 관광객까지 몰아낸 것은 무형의 손실이다.
유혈사태에 이르기까지 태국사회에 갈등을 조정할 권위나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위대 지도부가 투항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하지만 태국사회에 만만찮은 과제를 던졌다. 시위를 촉발시킨 것은 계층 간의 갈등이다. 그것은 어느 사회나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이면에 빈민층의 분노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휘발성이 강한 문제고, 지역성까지 띠고 있어 사태해결이 그리 쉽지 않다. 엊그제 30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것처럼 태국 유혈사태의 후유증도 오래갈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태국사회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몫이다. 하루빨리 그들이 따뜻한 미소를 되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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