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와 기자 사이엔 이런 대화가 되풀이됐다. 하지만 21일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6·2지방선거의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야권 단일후보가 정당이 다른 기초단체장 및 지방의원 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지가 현안이었다.
발단은 경기지사 선거다. 민주당과 단일화에 성공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가 경기지역의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 후보들을 지원하는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인지가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선관위의 태도가 분명해 보였다. 선관위는 17일 기자에게 “유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공직선거법 88조는 ‘후보자나 선거사무장 등이 다른 정당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후 선관위의 태도는 어정쩡했다. 유 후보는 2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민주당 소속 후보들과 함께 공동 유세를 폈지만 선관위는 손을 놓고 있었다. 전날에도 경기 수원시 행궁광장에서 열린 야4당 출정식에 유 후보와 민주당 후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중앙선관위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0일 저녁에서야 위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세부 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세부 지침을 살펴보면 오히려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이 더욱 헷갈린다.
‘직접적으로 다른 정당 소속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위법이다. 다른 정당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능동적·계획적 행위임이 인정될 때는 위법이다.’ 과연 무엇이 직접적이고, 능동적 계획적 행위일까.
선관위 관계자는 “유 후보와 민주당 후보들이 연대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밖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니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그렇게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선관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규정한 선거 행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여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심판이 “반칙이지만 지켜보겠다”고 한다면 어느 선수가 그 심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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