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14>야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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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5일 03시 00분


◇야생 속으로/마크&델리아 오웬스 지음·상상의숲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텐트 밖에서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텐트가 흔들렸고 발치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무겁게 공기를 갈랐다. 델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퍼가 고장 난 텐트의 입구 틈새로 어슬렁거리는 수사자 2마리의 커다란 머리통이 보였다. 델리아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사자들이 텐트 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바닥 냄새를 맡으며 거센 콧김을 내뿜자 수염이 침낭 끝을 스쳤다.”》

위의 글은 저자가 겪은 실제 상황이다. 텐트 안으로 수사자가 들어오려 하고, 달리는 차 바로 앞에서는 암사자가 덤벼든다. 7월에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기도 하고 낮 기온이 43도를 넘는 무시무시한 더위도 있다. 야생의 자연은 문명의 인간에게 혹독하다.

생태학을 공부하는 마크와 델리아 오웬스 부부는 대학원을 휴학하고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정했다. 현장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하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수중엔 낚싯대와 주전자까지 다 팔아치워 마련한 6000달러가 있었다. 부부는 1974년부터 1980년까지 7년 동안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오지에서 겪은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야생동물에 대한 딱딱한 연구보고서가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간 것’에 대한 기록이다.

두 사람이 머물렀던 중부 칼라하리의 디셉션 밸리는 다리 위로 쥐가 기어 다니고 하이에나가 45cm 앞까지 다가와 사람 냄새를 맡는 곳이다. 순간순간 목숨을 위협하는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을 부부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묘사한다. 이들이 안내하는 야생동물의 삶은 경이롭다. 먹잇감을 둘러싸고 자칼의 새끼는 아비와 투쟁을 벌이면서 경쟁심을 키운다. 수사자 한 녀석이 마취 총을 맞고 쓰러지자 함께 있던 다른 녀석은 동료가 깨어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의 신발 구멍에 코를 댄 들개는 발 냄새에 놀라 자빠지며 신발에다 흙을 뿌린다. 사냥꾼들이 놓은 들불 속에서도 희생된 동물은 파충류와 곤충 몇 마리뿐, 굴속에 숨고 풀 없는 곳으로 도망치는 등 제 나름의 방법을 익히면서 동물들은 위기를 이겨낸다.

부부가 소개하는 갈색하이에나의 양육 방식도 눈길을 끈다. 갈색하이에나는 새끼를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공동육아 시스템을 취한다. 새끼가 어미를 잃으면 무리가 입양해 기른다. 야생동물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졌던 사람들에게 야생의 환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위협적인 곳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크와 델리아 부부는 야생의 인내심과 협동, 강인한 생명력을 체득해 나간다.

수십만 마리의 누(Gnu)가 물을 찾아 움직이다 철조망 울타리에 막혀 떼죽음을 당한다. 야생동물이 방목지의 가축에게 구제역을 옮긴다고 여긴 사람들이 친 울타리다. 여기서부터 마크와 델리아는 목소리를 높인다. 인간의 철조망은 먹이와 물을 찾아가는 동물의 이동로를 막는다. 자연보호구역 안에서 뻔뻔스럽게 총을 쏘는 사냥꾼들 때문에 수사자가 죽어간다. 자연보호구역이 넓다지만 야생동물이 살아가기엔 턱없이 좁다. 칼라하리에 숨어 있는 야생의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보물인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덕목을 주는지 알리고자 마크와 델리아는 야영지의 텐트를 박차고 나온다.

이들의 결단은 의미 있었다. 부부가 함께 쓴 이 책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자연 다큐멘터리의 고전이 되었다. ‘야생 속으로’가 유명해지자 부부는 자연보호기금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 기금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자연보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쓰이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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