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창립한 지 2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교조로서는 자축연이라도 열어야 할 날이지만 이날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출발해 조계사까지 ‘3보 1배’를 했다.
꼿꼿한 자세로 세 발짝마다 큰절을 하는 정 위원장의 얼굴은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 5일째 계속된 단식농성의 흔적이었다. 그는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교사 전원을 파면 또는 해임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온 다음 날인 24일부터 단식 중이다. 마침 그날 비가 내려 정 위원장은 정부중앙청사 후문 밖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우산을 쓴 채 오후 6시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단식농성을 벌인 뒤 저녁에는 조계사에 설치한 천막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 위원장의 요즘 일과다.
21번째 창립기념일, 전국 전교조 조합원들은 위원장의 단식농성에 동참하는 의미로 자발적으로 점심을 굶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예년 같으면 집행부가 모여서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하는 날인데 올해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파면·해임하겠다는 전교조 교사는 134명. 징계가 실제로 이뤄질 경우에는 전교조 창립 이후 최대 규모다. 하지만 전교조의 대응은 조용한 편이다. 대규모 집회도 없었고 확성기와 구호도 등장하지 않았다. 창립기념일에도 3보 1배를 마친 뒤 오후 7시부터 촛불문화제를 여는 것이 전부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데다 민노당 가입 혐의 교사들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자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가 최악의 창립기념일을 맞이하게 된 데에는 사법부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섣불리 중징계 방침을 정한 정부의 탓이 크다. 만약 전교조 주장대로 98명이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에는 억울한 해직교사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밝힌 대로 전교조가 모든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계속 유지한다면 다음 창립기념일은 더욱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노조법상 해임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지 않으면 합법노조의 지위를 잃게 돼 ‘법외노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내부에 고통의 싹이 있다면 비명만 지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라내고 치유하려 해야 한다. 스물한 살을 맞은 전교조의 성숙한 자세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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