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백령도 ‘바닷속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일 03시 00분


동강 난 천안함 선체를 보러 가는 날은 날씨마저 잔뜩 흐렸다. 어제 한강에서 군 헬기를 타고 평택 2함대사령부로 향했다. 3월 26일 침몰된 지 66일 만이다. 헬기의 창밖으로는 서울 시내와 관악산, 청계산, 경기평야, 서해안고속도로의 평화로운 모습이 펼쳐졌다. 비행 17분 만에 사령부에 도착해 함수(艦首)에 뚜렷이 ‘772’ 번호가 남아 있는 천안함의 처참한 몰골을 목도하자 온갖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TV에서 침몰과 장병 구조장면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악몽의 시간, 희생자 시신 및 선체 인양, 원인 조사, 정치권과 사회의 극심한 갈등….

▷안내를 맡은 박정수 합참전력기획2차장(해군준장)은 아직도 그날의 통한(痛恨)을 다 삭이지 못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박 준장은 “이발소에 가서도 천안함 얘기가 나오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병사들의 희생에 군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갈기갈기 찢기고 너덜너덜한 선체 아래층 가스터빈실과 디젤엔진실 주변의 철골과 파이프라인, 전선, 통신케이블이 폭발 순간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었다.

▷북한은 ‘선거용 조작극’이라며 적반하장으로 대남(對南)협박에 열을 올린다. 기자회견을 열어 수거된 어뢰 추진체에 적힌 ‘1번’에 대해 “농구선숩네까, 축구선숩네까”라며 딴전을 피웠다. 그제 일요일엔 10만 평양시민 군중대회를 열었다. 남쪽의 일부 야당과 친북 좌파세력도 국내외 전문가 73명의 과학적 결론에 눈을 감고 있다. 진보신당은 한술 더 떠 북한과 중국, 러시아, 중립국과의 공동조사를 요구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북에 면죄부를 주고 싶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발표를 닷새 앞둔 5월 15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백령도 현장으로부터 “어뢰 스크루를 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처음엔 믿기지 않아 “배에서 떨어져 나간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 장관은 미국에 가 있던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과 전화로 상의하고 현장에서 휴대전화로 찍어 보낸 어뢰 추진체 사진을 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북의 소행 가능성을 ‘95% 정도’에서 100%로 높여준 ‘바닷속 선물’이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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