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 한국대표팀의 첫 경기인 그리스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태극전사 23명의 명단도 발표됐다.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인한 분노와 긴장, 6·2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쟁 등으로 어수선하지만 둥근 공의 마법을 기다리는 설렘을 감추긴 힘들다. 월드컵 본선에 7연속 진출한 한국은 FIFA 랭킹이 47위지만 16강에 진출하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다.
축구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길거리 운동이다. 길거리에서 탄생한 위대한 축구 선수가 많다. 펠레는 넝마 조각과 신문지를 채운 양말을 차면서 축구 황제로 성장했다. 프랑스의 축구 천재 지네딘 지단도 동네 공터에서 공을 찼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깡통이나 돌멩이, 우유팩을 친구와 함께 걷어차다 땀범벅이 되면 찬물을 벌컥벌컥 마셔댄 상쾌한 기억을 지닌 이가 적지 않다. FIFA 2006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축구선수는 2억6500만 명이고 이 가운데 여자 선수는 2600만 명이다. 2000년에 비해 9%가량 늘었다. 심판과 축구 종사자는 500만 명이다. 축구는 전 세계 인구의 4%가량이 즐기는 대중 종목이다.
옛날부터 공차기는 즐거운 일이었다. 김유신이 축국(蹴鞠)이란 공차기 놀이를 하다 훗날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옷깃을 떨어뜨렸고, 김유신의 누이동생은 이 옷깃을 꿰맨 인연으로 왕비가 됐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고려시대엔 관리들이 국사에 지장을 줄 정도로 축국을 즐겨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1900년대 초 각급 학교 운동회마다 축구는 빠지지 않는 놀이였고, 일제강점기 일본인과의 경기는 애국심의 용광로였다. 광복 이후 혼란 속에서도 1946년 제1회 서울시 실업축구대회에 53개 팀이나 참가할 정도로 축구는 인기였다.
축구는 불가측성이 더해져 관중을 더욱 열광하게 만든다. 축구는 발로 공을 다루는 유일한 종목이다. 골키퍼가 찬 공이 상대편 선수의 볼기짝에 맞아 골인이 되기도 하고 헤딩도 있으니 손을 제외한 모든 신체가 쓰이지만 발이 주무기다. 결코 평평하지 않은 발로 공을 차면 다양한 변주곡이 나온다. 수십 년간 공을 다뤄온 선수일지라도 공을 의도한 곳에 정확히 보내기란 쉽지 않다. 한 경기에서도 실축과 패스 미스가 수없이 나온다.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에서 골이 터지기도 한다.
이를 보는 관중이 즐겁지 않을 리 없다. 한국 축구팬은 2002년 콜리건(korligan)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유명하다. 축구를 평화롭게 즐기는 롤리건(roligan)이면서 뜨거운 응원 열기와 질서 정연함을 갖춘 한국인이란 뜻이다.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은 축구를 둘러싼 놀이문화의 상징이 됐다. 올해 월드컵에서도 어김없이 놀이판이 벌어지리라. 거리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함성이 터지고 태극전사의 선전을 기원하는 갈망이 전국을 뒤덮으리라. 한국팀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같은 선수가 없을진 몰라도 태극전사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12번째 선수인 국민이 있다.
이 놀이판엔 좌파도 우파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남한팀이 우측을 파고들고 북한팀이 좌측을 활용하더라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으리라. 경기는 경기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온 국민의 시선이 그라운드에 꽂히면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엉뚱한 의혹이나 정치인의 정쟁도 빛이 바래리라. 이 사회의 번잡함도 함성과 함께 씻겨 나갔으면 한다. 분열과 갈등의 먹구름이 월드컵 기간과 그 이후 며칠만이라도 걷혀 눈부시게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