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선진국 되려면 100년’ 中의 허허실실 논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일 03시 00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가진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초청 오찬 연설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 달러로 중국의 3700달러와 비교해 차이가 크다. 중국 중서부는 여전히 낙후돼 있다. 중국이 중등(中等)국가가 되는 데는 수십 년, 선진국이 되려면 100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원 총리는 “이는 겸허가 아니고, 중국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라며 “중국의 경제 발전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일본에도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원 총리의 발언에서 경제력 규모 2위인 일본을 곧 추월할 중국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올해 초부터 ‘일부 전문가’가 올해 중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이 이런저런 해석을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다고 풀이했다.

원 총리의 방일 전날 언론에 보도된 일본 내각부의 ‘세계 경제의 조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일본과 중국의 비중은 각각 8.8%와 8.3%로 차이는 근소하다. 1위 미국은 24.9%였다. 하지만 2030년에는 중국이 23.9%로 높아져 일본의 예상치 5.8%의 4배나 되고 미국(17.0%)도 제치고 1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GDP는 4조9089억 달러(추정치)이고 일본은 5조680억 달러다. 4월 IMF가 발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중국이 10.0%, 일본은 1.9%였다. 올해 중국의 일본 추월은 불 보듯 뻔한 셈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자세 낮추기’로 일관한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G2(미국과 중국 2개국)’라는 용어에는 거부감마저 드러낸다. 중국 정부 관계자나 일부 학자는 “중국은 아직 ‘세계 최대의 개발도상국’으로 G2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이는 중국을) 강대국으로 치켜세워 대국의 책임만 지우려는 음모”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이번 일본 내각부 보고서를 포함해 중국이 일본이나 미국을 언제쯤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만 나오면 빼놓지 않고 크게 보도한다. 알부자이면서도 허름한 옷차림으로 티를 내지 않는 ‘왕서방’처럼 세계무대에서 ‘허허실실 전법’으로 실리를 챙기는 중국의 전략을 주시해야 할 때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