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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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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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란 그림을 본 일이 있다.

로마 군인 차림을 한 젊은이 3명이 칼 세 자루를 들고 있는 아버지에게 각각 손을 내밀고 있다. 아버지 뒤쪽으로는 젊은이들의 아내와 여동생인 듯한 3명이 비통에 잠겨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84년 그린 이 그림은 고대 로마의 고사를 묘사한 것이다. 기원전 7세기 로마는 인근 도시국가 알바롱가와 전쟁을 하게 된다. 두 나라는 불필요한 출혈을 하기보다는 대표자의 결투로 승패를 결정하기로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세 젊은이가 로마 쪽 대표선수인 호라티우스 가문의 3형제다.

이 3형제는 알바롱가의 대표 가문 3형제와 맞붙어 2명이 희생되지만 남은 1명이 적 3형제를 차례로 쓰러뜨려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 젊은이가 죽인 3명 중 한 명이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것. 그림에서 비통해하는 세 여인은 남편들과 약혼자의 죽음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오래전에 봤던 이 그림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말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지만, 전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데는 거의 모든 국민이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데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쟁이 두렵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을뿐더러 필연코 전쟁은 크건 작건 국민의 땀과 눈물, 희생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은 호라티우스 가문의 형제들처럼 목숨까지는 아닐지언정 국가를 위하여 얼마만큼의 땀과 눈물, 희생을 바칠 수 있을까.

머나먼 로마 시절의 얘기라고? 아니다. 지금도 세계 많은 나라의 국민이 국가를 위하여 땀과 눈물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고 있다.

미국만 해도 2003년 3월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이후 올해 5월 말까지 미군 약 44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달 평균 51명꼴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01년 10월 개전 이후 올해 5월 말까지 사망자가 1000명을 넘었다. 아프간 미군 사망자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 지난해에만 316명이 숨졌다. 매월 26명꼴이다.

미국은 슈퍼 파워니까,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그만한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이 전쟁 당사국이 될 가능성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베트남전쟁을 겪어냈다. 그러나 1973년 한국군의 베트남 철수 이후 우리는 전쟁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천안함 폭침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동족상잔의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다행히 천안함 사태도 군사적 충돌보다는 경제적 외교적 대응으로 흐름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지킨다’는 명제가 진리임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리하여 천안함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천안함 유족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최고의 남편이자 아버지였어요.…사랑한다는 말 자주 못해서 미안해요. 사랑해요.”(고 김종헌 상사에게 아내가)

“귀염둥이 막내야.…너는 야단 한번 안 맞을 정도로 기쁨만 주던 아들이었다. 내게 아들로 와줘서 고마웠다.”(고 나현민 상병에게 어머니가)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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