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선거의 위력은 대단하다. 예상 밖의 대패를 당한 집권당 사람들이 겸허한 반성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고위 인사의 사퇴도 줄을 잇는다. 선거의 힘이다. 한나절의 잔치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선거는 분명 민주주의의 꽃이다.
6·2지방선거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한결 성숙해졌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다. 수많은 출마자가 명을 걸다시피 선거운동을 벌였지만 후진국형 사건사고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너무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선거가 조용히 마무리됐다.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한나라당한테는 뼈아플지 몰라도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선거 당일 학생 20여 명과 함께 관악산에 올랐는데 대부분은 미리 투표하고 왔다. 미처 투표하지 못한 학생 2명은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막걸리 한잔의 유혹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를 독려한 트위터의 힘도 주목해야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젊은이는 중심을 잘 잡은 듯하다.
이번 선거도 집권세력에 대한 중간평가의 전통을 이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을 잡으면 세상을 다 바꿀 수 있을 듯 기세등등하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듯 행동한다. 앞선 정권이 빠짐없이 수렁에 빠졌건만 자신만은 다르다는 착각 속에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권력은 유한하다. 유권자의 평가는 냉정하기만 하다. 결코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이명박 정권은 오만하기까지 하다. 좌파 10년을 일소한다면서 철학도 비전도 없이 허둥댔다. 실용주의가 독선으로 흘러버리면 결과는 최악이다. 좌든 우든 정치는 현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신념 과잉은 정치와 상극이다. 정치인이 자기도취에 빠지는 것은 치명적 죄악이다. 독일의 대학자 막스 베버가 한 말이다.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이 패배를 인정하며 겸허한 반성을 되뇌는 순간에도 결기가 가득하다. 말 따로, 표정 따로가 역력하다. 이 지경에도 그러니 잘나갈 땐 오죽했을까. 민주주의는 정치인의 오만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지탄받아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천안함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더 애통한 일은 끝내 이런 민족사적 비극마저 정쟁(政爭)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면 정말 나쁜 짓이다. 천안함 사건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지 몰랐다면 말이 더 안 된다. 한마디로 무능의 극치이다. 유권자들은 이 둘을 함께 꿰뚫었다. 한나라당의 자업자득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도 독선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야권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보더라도 단일화 전술 덕분이다. 그들은 반목과 차이를 극복하고 유권자들이 후보를 선택할 때 기준의 명확성을 높여줬다고 자찬한다. 선거연합을 미화한다.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듯이 우쭐대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제각기 정당을 만들 때는 다 원대한 뜻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신념과 정책이 달랐으면 따로 당을 꾸렸겠는가. 정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직선거에 후보를 내는 일이다. 이 중차대한 일에 그들은 한뜻으로 뭉쳤다. 소소한 차이는 넘어갈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눈이 먼 나머지 유권자에게 ‘졸속 답안’을 강요했다는 비판을 듣기 싫은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한데 뭉쳐라. 자신이 하면 연합이고 남이 하면 야합일 수는 없다. 정당이 정당이기를 포기하는 마당에 축배가 웬 말인가. 모처럼 상승세를 탄 한국 민주주의에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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