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의 시선이 ‘민심의 대이동’으로 일컬어지는 6·2지방선거 결과에 쏠려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또 하나의 선거가 있다. 9일로 예정된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선거다. 마침 며칠 전 서울대병원장도 바뀌어 관심은 증폭됐다. 근대(近代) 이후 우리 의학과 의료 발전의 양대 산맥을 떠받쳐온 두 병원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생각해볼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 세브란스와 서울대병원은 누가 뭐래도 우리 의료계의 두 대갓집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의 ‘소유권(?)’을 놓고 유치한 시조(始祖) 싸움을 벌이는 것도 그런 대갓집의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그들만의 ‘존심’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국민의 특별한 존경과 신뢰가 뒷받침된 ‘자존’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이제는 그들 스스로도 삼성의료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과 함께 빅5의 일원으로 지내는 데 자족하는 듯하다. 연세의료원장 선거 후보인 정남식 의대 학장이 정견발표문 첫머리에서 “우리 연세의료원은 자랑스러운 역사와 달리 최근에 설립된 기관에도 미치지 못하는 브랜드 가치의 하락을 절감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서울대병원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던’ 노태우 정부를 연상시킬 때가 적지 않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으로 탈냉전시대 대한민국의 좌표를 새로 잡았지만 내치(內治)에서는 민심 이반으로 기진맥진했다. 라오스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형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서울대병원의 처지도 비슷해 보인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6·25전쟁 직후 국제사회와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의 도움으로 실시됐던 한국 의학 현대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의학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서울대병원이 반세기 전의 그 은혜를 라오스에 대신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수를 보내면서도 자꾸 노태우 정부가 중첩되는 이유는 서울대병원이 과연 그에 걸맞은 민심을 얻고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에 물었다.
“물량 경쟁을 하는 걸 보면 다른 민간 대형병원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대형병원은 이미 넘치고 넘친다. 굳이 서울대병원이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서울대병원은 답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환자 진료를 보려면 서울대병원을 보라!’고 할 만큼 최고의 국립대학병원다운 의료리더십(Clinical Leadership)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그러니 국가와 국민에게 당당하게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민간 대형병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환자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자기 맨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몇몇 국립병원은 특진비 관행까지 도려내고 있지만 서울대병원은 그마저도 안 된다.
서울대병원엔 사명, 기독교정신의 세브란스병원엔 소명을 기대하는 제목을 달았지만 두 병원의 내일엔 뭔가 남다른 가치, 뭔가 특별한 임무가 있었으면 한다. 어쩌면 그건 두 병원의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인지도 모른다.
11일 취임하는 정희원 서울대병원장과 9일 선출될 새 연세의료원장에게서 듣고 싶은 얘기도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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