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동엽]‘한 우물 파기’의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4일 03시 00분


집착과 집념 사이의 줄타기
기업도 정치도 숨고르는 시간을

어떤 대안을 선택한 후 시간이 경과하며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받으면 의사결정이 더 합리적으로 발전할까?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봐도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증거가 속출하는데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자원을 쏟아 붓다 치명적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경영이론에서는 ‘몰입의 상승’이라고 부르는데 의사결정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정보와 증거가 나와도 과거 결정을 수정하지 않고 오히려 몰입과 투자를 더 증대시키는 비합리적 집착 현상을 말한다.

기업과 정부 공공조직을 막론하고 치명적 위기는 대부분 몰입의 상승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 위세를 떨치던 대우그룹의 붕괴나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기는 상황 변화에 상관없이 일단 내린 신사업 진출 결정에 집착하다 초래한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한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명백해지는데도 계속해서 혈세를 투입하다 재정이 파탄 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1960년대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직후 정글지역 게릴라전의 특수성 때문에 이길 수 없다는 증거가 속출하는데도 엄청난 추가 파병을 하다 참담한 패배를 맛본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하에서 이루어지므로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특히 극도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21세기 환경에서 의사결정 오류는 예외가 아닌 일상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초 의사결정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속출하는데도 수정하지 않고 끝까지 과거 선택에 미련하게 집착하다 대참사를 초래하는 몰입의 상승은 심각한 문제이다. 잘못된 과거 선택에 대한 비합리적 집착을 이상적 목표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집념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집착과 합리적 집념 간 혼동의 원인은 일관성의 논리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관성 있다는 말은 합리적이라는 표현과 동일시되어 왔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행동 일관성은 중요한 미덕으로 칭송되곤 한다. 서양의 경우 인사평가 항목에 반드시 일관성이 포함되며 중국에서도 초지일관을 중시한다. 우리 속담에서도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며 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나 증거를 무시하고 무턱대고 일관성을 고집하는 태도는 합리적 집념이 아니라 비합리적 집착일 뿐이다. 오히려 합리적 태도는 ‘우물을 팔 만큼 팠으나 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데서 파보라’는 입장이다. 어떤 대안이 실제로 더 나은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자는 자신의 초기 선택이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정보나 증거가 나오면 개방적 태도로 유연하게 과거 선택을 원점부터 재검토할 수 있어야 몰입의 상승에 빠지지 않는다.

기업과 정부 공공조직을 막론하고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제왕적 리더가 내린 의사결정은 특히 몰입상승의 위험이 높다고 한다. 설사 잘못된 선택임이 자명해도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경영이론에서는 극도로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21세기의 모든 의사결정은 본질적으로 틀릴 확률이 높다고 아예 전제하고, 특정 대안에 일관성 있게 선택과 집중을 하기보다는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대안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나가며 진정한 최적 대안을 발견해 나가는 리얼 옵션(real option) 접근을 강조한다.

격변의 21세기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은 병가지상사이므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개인은 물론 기업이나 국가의 지도자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점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정보와 증거가 나타날 때 몰입의 상승에 빠지지 않고 이를 개방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과거 결정을 수정할 수 있는가에 있다.

지방선거에서 낙선하거나 예상치 못한 곤경을 겪은 후보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좋은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는데 국민이 너무 몰라줘서 섭섭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이상적 목표에 대한 집념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몰입의 상승으로 초래된 비합리적 집착이 아니었나 원점부터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몰입의 상승을 피하려다 진정한 신념도 포기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당락에 상관없이 선거를 치른 모든 후보는 물론 선거의 대상이 아니었던 정치인까지 차분하고 냉정하게 난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목표에 대한 합리적 집념과 비합리적인 집착을 정확하게 구별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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