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廢業권장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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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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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사람이 많은 부자 나라가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은 세계 제일의 부국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 밀려났다. 산업혁명은 왜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을까.

그레고리 클라크라는 경제사학자의 가설이 흥미롭다. 영국은 중국보다 중산층 이상 인구가 많았다. 영국에서는 경제발전에 유리한 중산층 가치가 사회 전체에 확대된 덕분에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날 수 있었다는 논리다. 흥하는 이웃의 유전자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국가경제가 발전한다는 얘기다(좌승희 ‘성공경제학’).

반면에 가난해지는 나라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흥하는 이웃을 시기하고 가혹한 세금을 매긴다. 법인세 상속세의 세율이 올라가고 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해외로 떠날 채비를 차린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나라의 곳간이 피폐해지니 못사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잘사는 이웃이 줄어들어 고민에 빠진 나라가 많다. 수백 년 동안 가업(家業)을 계승하는 가족경영 중소기업이 많은 일본에서는 매각되거나 문을 닫는 중소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폐업률이 높아진 이유 중 하나는 가업 상속의 감소다. 젊은 2, 3세들이 가업을 이어받길 원치 않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힘든 가업을 이어받기보다는 대기업이나 서비스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점점 가업 상속이 줄고 있는 중국에서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수백 년을 이어가는 장수기업을 키우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부동산 같은 재산 상속과 달리 가업 상속에 대해서는 세율을 낮추고 지원을 늘리는 나라가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은 상속 기업을 5년 이상 계속하면 상속 재산의 85%를 공제해주고, 7년 동안 계속하면 100%를 빼준다. 일본은 재작년에 중소기업의 비상장 주식에 대해 상속세 납세 유예 제도를 신설했다. 가업을 주식으로 물려주면 일자리를 유지하는 한 상속세를 거의 안 내도록 한 것이다. 요컨대 황금알을 낳는 기업을 한 번에 잡아먹지 않고 계속 알을 낳도록 하려는 정책이다.

대만은 재작년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10%로 파격적으로 낮췄다. 우리나라 상속세율 50%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중소기업보다 대만 중소기업의 생명력이 더 긴 것에는 가업 상속을 장려한 요인도 있다. 대만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지난해 23위에서 올해 8위로 15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업의 상속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물려받은 재산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가 아니므로 부당하며 기회균등에 어긋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정부가 과세로 전부 또는 대부분을 몰수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니 상속세율이 높고 포괄주의를 적용해 상속세를 무겁게 물리는 편이어서 가업을 이어받기보다는 폐업하고 재산만 물려주는 사례가 많다. 일자리가 줄 수밖에 없다.

이젠 상속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편법 재산 상속은 물론 차단해야 하지만 재산 상속을 막느라 가업 상속까지 어렵게 해서는 일자리 감소를 비롯한 사회적 손실이 더 크다. 상속세에 의한 재분배 효과도 크지 않다.

오히려 가업을 상속할 때 상속세 부담이 더 큰 경우도 있다. 기업의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 증여할 때에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한국에서는 상속세를 낮추자는 논의는 금기다. ‘부자 감세’라는 공격을 받고 견뎌낼 정치인은 거의 없다. 2008년 제출된 세법 개정안은 작년에 국회에서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눈치를 보느라 세법 개정안을 묵히는 사이에 문 닫는 중소기업이 늘고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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