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진보 교육감과 포퓰리즘 경쟁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교육과정평가원이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의 경우 교육방송(EBS) 교재에서 숫자만 바꾼 문제를 내고 외국어영역에선 교재 지문을 그대로 베낀 문제를 3개 이상 출제한다고 발표했다. 현 정부의 지상과제인 사교육 잡기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부정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암기한 지식 대신에 창의력을 묻고, 깊이 있는 사고력을 평가하는 세계적 추세에 비추어 거꾸로 가는 교육이다. 변별력이 약화되면 상위권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돼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EBS 문제를 자구(字句)만 슬쩍 바꿔 출제하면 사교육이 줄 것이라는 예측도 단견(短見)이다. EBS 교재 풀이 과외가 벌써 생겨나고 있다. EBS 교재가 아닌 데서 출제되는 문제에 사교육을 집중할 가능성도 높다.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과 교육 포퓰리즘 경쟁을 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사교육을 잡는 데 들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공교육의 내실을 강화하는 데 쏟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교육당국이 지금 할 일은 사교육으로 길러지지 않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공교육에서 어떻게 배양하고 측정할 것인지 연구해 결과를 내놓는 일이다. EBS 교재를 ‘수능예상 문제집’으로 만드는 교육은 사교육 못지않게 공교육에 해독(害毒)이 될 것이다.

6·2지방선거를 통해 전국 6곳에서 무상급식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당선됐다. 이들은 정부가 학교자율성 강화 차원에서 추진한 교육정책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이 정부가 고사시키기에 들어간 외국어고를 아예 없애거나 일반고로 전환하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그는 지정조건과 관계법령을 위반하는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하는 방안도 시사했다. 그렇지만 관계 법령에는 지정 후 5년 동안에는 취소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교육감 성향에 따라 교육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혼란과 피해를 안겨주는 처사다. 현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수월성 교육을 약화시키고 진보 교육감들은 한술 더 떠 ‘확인 사살’을 하는 형국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교육 격차 해소는 방향만 잘 잡으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곽 당선자가 시사한 학군 조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방식은 앞서 가는 학교와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뒤처진 아이들을 힘껏 밀어주는 것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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