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은행稅, 취지에 비해 부담 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7일 20시 00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협력을 위한 최상위 포럼으로 자리매김한 주요 20개국(G20)의 은행세(稅) 논의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났다. 은행세란 금융위기 수습 비용을 국민 세금이 아닌 금융회사들의 부담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미리 걷어두거나 이미 투입한 구제금융을 회수하기 위해 매기는 세금이다. 4, 5일 이틀간 부산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는 ‘은행세를 각국이 일괄적으로 도입하지는 않는다’는 합의 같지 않은 합의를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금융기관에 4500억 달러 이상의 자본을 집어넣어 납세자들의 불만을 사자 은행세 도입에 열심이다. 대형 금융기관이 가진 예금 이외의 일정한 부채에 0.15%의 세율로 향후 10여 년간 약 1000억 달러를 부과하는 계획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도 부과 준비를 하고 있다.

반면에 금융부실이 터지지 않아 구제금융을 쓰지 않았던 캐나다 호주 일본 브라질 중국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나라마다 환경과 조건이 다르므로 각국이 알아서 하자는 주장이다. 미국은 부산 회의에서 회원국 간 견해차를 좁힌 뒤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문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가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은행세 방안은 여러 시각에서 겹눈으로 짚어봐야 한다. 찬성 국가들도 세금 또는 부담금이나 보험료로 할지, 어떤 금융기관의 어떤 부채를 대상으로 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세금을 은행이 전적으로 부담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없다. 대출 이자에 얹혀 금융 고객이 뒤집어쓸 가능성이 높다. 은행세로 조성된 구제금융 재원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오히려 부추길 우려도 있다. 금융위기로 세계가 흔들릴 때마다 금융개혁 주장이 힘을 얻었지만 논란이 큰 은행세를 성급하게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클 것이다.

한국은 G20 회의에서 은행세 도입에 찬성했다. 은행세를 통해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은행 지점들이 외화를 빌려오는 것을 억제한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마다 외환시장과 증권시장이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좋은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금융시장이 투자가치가 있는 한 외자는 계속 드나들 것이고 일부 기업은 은행세를 대신 내주면서 외화대출을 받으려 할 것이다. 금융위기 처리 비용의 상당부분을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면 은행세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다. 원화 국채에 50조 원가량을 투자한 외국은행 지점들의 외화 차입이 규제를 받으면 채권시장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2008년의 경우 주요국 및 신흥국 45개국 중 외자의 유출입이 11번째로 심했다. 자본시장 개방 수준에 비해 환율 변동이 특히 심한 나라로 꼽힌다. 은행세로 자본 유출입을 규제할 때 실효가 클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G20 부산 회의에서 은행세 도입이 불발한 것은 다행이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가 금융규제를 강화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따라 할 필요는 없다. 미국은 1999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허용했다가 금융위기에 놀라 엄격한 분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는 발달한 투자은행을 가져보지 못했다. 주요국은 대형화 글로벌화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다. G20의 금융개혁 방안이 우리 시장의 불안정성을 줄여줄 수 있지만 성장성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