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개성공단기업협회 임시총회 현장. 회의장에서는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총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취재진은 문밖에서 기다려야 했지만 신임 회장단과 후발 입주업체 대표들 사이에서 오가는 고성으로 회의장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회의가 길어지면서 중간에 화장실로 향하는 기업인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이날 총회 안건은 대북 심리전 보류 요청, 경협보험 개선, 재산보호 대책 등 세 가지였다. 이 중 개성공단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는 대북 심리전에 대해 협회가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부 기업인의 불만이 컸다. 회장단 측은 “정부가 (심리전 보류 요청이) 남남(南南) 갈등으로 비칠 수 있어 자제를 요청했다”며 “향후 심리전이 진행되면 정부에 자제를 요구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28일 일부 입주기업은 협회 집행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0여 개 회원사의 서명을 따로 받아 대북 심리전 보류를 정부에 요청했다. 급기야 협회 집행부와 갈등을 빚어온 30여 개 후발 기업이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한 후발업체 대표는 “적전분열이라는 비판도 있겠지만 협회 무용론까지 나오는 실정에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북 심리전 재개를 둘러싸고 분열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양측 주장은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협회 집행부의 주장대로 북한이 남측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이 서로 갈등을 빚으면 우리나라에 이로울 것은 별로 없다. 게다가 보상 문제를 앞두고 괜히 정부를 자극해서 득이 될 게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의 개점휴업 상태에 몰려 파산 위기에 처한 후발업체들도 할 말이 많다. 예컨대 협회가 총회를 연 것은 올 3월 초 신임 배해동 회장 선임 건 이후 이번이 3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최근 개성공단 폐쇄 위기를 맞아 협회가 제대로 자기 몫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정부도 업체들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당수 기업이 한계상황에 내몰렸지만 통일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민간 연구기관들이 폐쇄 시 대체 용지 조성 등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고 있다. ‘현실’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기업인들과 정부가 허심탄회하게 현실적인 대책을 논의하고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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