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퇴장 요구받는 ‘올드 보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9일 20시 00분


지난달 26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외교통상 통일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대상 천안함 설명회가 열렸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극적으로 건져 올린 북한 어뢰의 추진체에 대한 브리핑을 마칠 시간이 되자 “더 해도 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근거 박약한 피로파괴설이니 미군오폭설이니 하는 괴담을 일거에 쓸어낼 수 있는 증거물이었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앞에 군(軍)보다 더 들뜬 곳은 한나라당이었다. 이윤성 의원은 “다행히 천안함 사태가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났)다”라고 실언을 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2절까지 부르면 싫증내는 사람도 나온다.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천안함 기대기’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반공을 편리한 집권도구로 써먹던 냉전시대 ‘올드 보수’가 떠올랐다. 군대 안간 젊은 세대는 야당의 ‘전쟁이냐 평화냐’식 정치광고에 더 이끌렸다. 올드 보수들의 덜컥거림은 계속됐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버리고, 1980년대 권위주의 시절을 연상케 하는 경찰의 행인 가방 뒤질 권한의 법제화를 추진했다.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20, 30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올드 보수는 젊은층이 투표장으로 몰려올까 봐 겁부터 낸다. 종교단체와 환경단체들은 환경과 복지를 얘기하는데 건설과 성장만 얘기한다. 손님은 자장면도 먹고 싶다는데 음식점 주인은 탕수육이 몸에 좋다며 자꾸 들이민다. 과거 정권의 ‘코드인사’ 적폐를 청산하랬더니 ‘강부자 고소영’ 아니면 대선캠프 출신, 과거 지인(知人)이라는 협소한 인재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인사가 되풀이된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말뿐이었다. 국방장관 빼고는 군대를 제대로 갔다 온 적이 없는 사람들이 청와대 지하벙커에 앉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한다. 고위층엔 군대 못갈 병약한 자제들이 왜 그리도 많은가. “전쟁 나면 우리만 나가서 죽으란 거냐”는 청년들에게 그들의 애국심 부족만 탓할 수 있을까.

진보 쪽은 정권탈환의 진지를 구축하겠다며 정당 울타리를 뛰어넘어 곳곳에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이익연합체만도 못한 인상을 주는 보수들은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 싸움에 지원유세조차 반 쪼가리다. 내 사람 챙기면서 잠재적 경쟁자는 공천에서 밀어내고, 후보단일화는커녕 보수끼리 헐뜯기 바쁘다. 20, 30대는 물론이고 역대 선거에서 균형추 역할을 했던 40대까지 야당 또는 무소속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이런 약골(弱骨)로는 정권 재창출은 힘겨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좌파정권 10년에 환멸을 느낀 국민이 531만 표 차로 만들어준 정권이 임기반환점도 못 돌고 비틀댄다면 보수의 불행을 넘어 나라의 불행이다. 철지난 올드 보수들은 퇴장할 때가 됐다. 나이가 아니라 정신이, 기풍이 문제다. 이 땅의 보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몸집 불리기식 보수대연합이 아니라 썩은 살을 도려내는 보수대(大)개혁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세계를 향한 열린 눈을 갖고 국민에게 꿈을 주는 미래지향성, 골목대장식 계파정치를 거부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헌신성, 자유민주주의 가치인 인권과 민주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 복지와 생산적 경제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추진력, 기동성, 기획력, 도덕성. 이런 미덕(美德)으로 무장한 ‘젊은 보수’들이 전면에 나설 때 ‘대한민국호(號)’는 비로소 선진화를 향한 항로로 들어설 수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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