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상이 모처럼 웃었다. 김국영(19·안양시청)은 7일 대구 전국육상선수권 남자 100m 예선에서 10초31로 골인해 31년 전 서말구(55)가 세운 한국기록(10초34)을 깨뜨렸다. 그는 준결승에선 10초23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자신의 기록을 0.08초 경신했다.
8일에는 전덕형(26·경찰대)이 남자 200m에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20초65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200m 한국기록은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트랙기술위원장이 198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20초41로 어느새 25년이나 됐다.
‘남자 100m 31년째 10초34’라는 꼬리표는 벗기 힘든 무거운 짐이었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에게 ‘한국 육상은 안 되나 보다’라는 체념이 생겼다. ‘모든 여건이 나아졌는데 왜 기록이 좋아지지 않느냐’며 서로를 비난하고 스스로 자책하던 육상계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육상 발전을 위한 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유치했지만 오히려 국제적인 망신만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지난해 새로 집행부를 구성한 대한육상경기연맹이 꺼내든 카드는 간단했다. 유망주를 모아놓고 예전보다 많은 투자를 하며 많은 훈련을 시켰다. 기록은 뒷전인 채 전국체육대회 순위 경쟁에만 매달리느라 해이해진 정신력을 다잡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 스프린터들은 달라졌다. 장 위원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선수들의 눈빛, 말투만 봐도 변한 걸 느낀다. 그야말로 독이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100m 한국기록 경신 특별 포상금 1억 원을 거머쥔 김국영 효과로 기록 향상을 향한 레이스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육상도 단거리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세계 정상은 물론이고 아시아 정상권과의 격차도 여전히 크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더욱 훈련에 매진하겠다”는 장 위원장의 말이 반가운 이유다.
2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나온 모태범과 이상화의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은 아시아 선수에 대한 편견을 깼다. 육상 단거리에서도 그런 성과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스피드스케이팅 은메달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는 18년이 걸렸다. 조급하게 올림픽 메달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인내를 가지고 선수들을 격려해야 한다. 물론 다시 뒷걸음질한다면 따끔하게 질책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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