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초등학교 2학년 여자어린이를 학교에서 납치해 성폭행한 범인 김수철이 “10대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고 동네사람들에게 자랑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는 자신을 담당한 구청의 사회복지사에게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을 쳐다보면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상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웃의 총체적 무관심이 어린 소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데 일조한 셈이다.
지난해 조두순 사건이 일어난 직후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됐다. 아동 성폭행범은 재범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이중처벌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자발찌 착용을 소급 적용하는 법안이 올해 3월 국회를 통과했다. 학교 주변 폐쇄회로(CC)TV 설치가 늘어났고 경찰은 우범지역의 순찰을 강화하는 등의 성폭행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분노는 한때였고 사회 현실은 방관과 구멍투성이였다.
범인은 1987년 강도강간죄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요주의 인물’이었지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가 아니고 그의 범행 시점이 1990년 이전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관리대상에서 빠졌다. 학교 주변 CCTV에 범인의 모습이 세 번이나 비쳤지만 모니터요원이 없어 범행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건 당일이 학교가 쉬는 재량휴업일이었다고는 하지만 방과후수업이 예정돼 있었던 만큼 학교 측은 교사나 경비인력을 동원해 안전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딸을 교문까지 데려다 주고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확인했으나 범인은 잠깐 사이에 면도칼로 협박해 끌고 나갔다. 이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내부에 있어도 마음 놓을 수 없게 됐다.
성폭행 예방을 위해 운동장 개방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으나 도심 지역에 공원이나 운동장이 크게 부족한 우리 형편에서는 합리적 대안이 아니다. 하교 때 학교 교문 앞에서 자녀를 학부모에게 인계하는 방안도 한국에서는 부모의 늦은 퇴근시간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보다는 예산이 들더라도 학교 경비인력과 거리의 CCTV 설치를 늘려 성폭행 사각지대, 사각시간이 없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상시적 감시시스템이 갖춰지면 성범죄뿐 아니라 학교폭력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