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은 한국을 자주 일본과 혼동하거나 중국 문명의 한 부속물 정도로 취급한다. 중국인에게 “한국은 뭐냐”고 묻는다면 “모든 것을 중국 문명에 빚지고 있는 소국(小國)”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불합리한 편견이다. 프랑스가 로마 문명에 빚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가 이탈리아가 되지는 않는다. 자유의 여신상도 현대적 창작물
삼성 현대 등 한국의 세계적 대기업들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풀어왔다. 이들 기업은 국가를 내세우지 않고 기업 자체의 질로 상품을 팔아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최근 20년간 세계의 상상 지도 속에 어떻게 한국을 자리매김할까 고민해왔다. 그 결과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은 서양에 19세기까지 ‘은둔 왕국’으로 알려졌다. 그 뒤를 이은 것은 20세기 초 시인 타고르가 한국을 다녀와 쓴 시로 유명해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호칭이다. 오늘날 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런 호칭에 불만을 갖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다이내믹하지 않은가. 이 말은 한국 정부의 문서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사용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브랜드위원회에 한국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를 맡겼다.
나는 한국의 상징으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제안했다. 일본의 반가사유상에도 영향을 미친 이 반가사유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1000여 년 앞서 예고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인이 모두 불교 신자는 아니라는 게 그 이유다. 물론 반가사유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한국을 이 작품으로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로서는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에 해당하는 것을 한국인이 원한다는 점을 고려해 이런 제안을 했다. 사실 한국에는 그런 게 없다. 한국의 아이콘은 새로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에펠탑도 자유의 여신상도 저절로 나타난 게 아니다. 둘 다 19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두 경우에 모두 사적(私的) 혁신이 중요했다. 엔지니어 에펠의 작품인 에펠탑은 여전히 그의 직계후손이 소유한 민간기업의 것으로 이 기업은 에펠탑을 관리해 수익을 얻는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 공화국에 호감을 가졌던 프랑스의 기부자들이 자금을 댔다. 그 받침대를 만든 돈도 같은 식으로 미국인의 개인적 기부에 의해 조달됐고 한참 후에야 뉴욕 시가 용지를 제공했다. 한국의 상징을 만드는 것이 꼭 국가의 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열린 눈으로 숨은 ‘에펠’ 찾길
한국의 상징은 과거의 영광에 호소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과장된 모사물은 피해야 한다.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창의적이고 미학적인 작품이었다. 모두 그 당시에 알려진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 또 둘 다 민족주의적인 작품이 아니었다. 에펠탑은 프랑스의 과거에 기대지 않고 1889년 당시 프랑스의 산업적 재능을 보여준 모던한 성공 사례다. 자유의 여신상도 미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을 만든 바르톨디는 프랑스로 이주한 이탈리아 조각가다.
한국에도 많은 바르톨디와 많은 에펠이 있다. 한국의 전통 문명에 뿌리박으면서도 완벽한 현대적 테크닉을 구사하는 조각가 디자이너 건축가 도시설계가들이 많다. 세계의 상상 지도 속에 한국을 위치시킬, 쉽게 잡히지 않는 그 상징을 찾아낼 사람들은 이들이다. 물론 한국인이 아닌 예술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길도 하나의 좋은 방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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