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MB 정부 ‘6·15 존중’이 낳는 혼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6일 03시 00분


통일부는 그제 “우리 정부는 6·15공동선언을 존중하면서 남북대화를 통해 이행문제를 협의해 나간다는 기존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6·15 10주년을 계기로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의 사과와 핵 포기를 촉구하며 한 발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9월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 남북 간 합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 정부가 과연 6·15공동선언의 각 조항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존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인지,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싶다.

6·15공동선언 2항은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돼 있다. 북한 평양방송은 2002년 1월 7일 “공동선언은 곧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국민이 공산화 통일을 목표로 하는 북의 연방제 통일론을 낮은 단계건 높은 단계건 수용할 리 없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한다’고 한 6·15 공동선언 1항은 북의 조국통일 3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과 무관치 않다. 친북세력은 이를 ‘외세 배격’으로 해석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전교조 일부 교사들은 6·15계기수업 때마다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끼리의 통일’을 강조할 뿐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은 가르치지 않는다.

이 정부의 대북 핵심정책인 ‘비핵·개방 3000’의 상생과 공영정신은 6·15공동선언이 아닌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그제 라디오연설에서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체성에 입각한 국정 기조는 확고히 유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가정체성 문제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6·15공동선언이 남북화해 분위기에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북은 그 뒤 핵무기를 개발하고 연평, 대청해전에 이어 천안함 사태까지 일으켰다. 김정일은 답방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내용의 문제는 차치(且置)하더라도 북이 6·15공동선언을 사실상 사문서(死文書)로 취급하는 판에 우리만 신줏단지처럼 모실 이유가 없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비롯해 야당과 친북단체들은 “조국 통일로 가는 유일한 길은 6·15선언 실천”이라며 우리 정부를 공격하는 북의 편을 들고 있다. 종북(從北)세력이야 북의 대변자라 치더라도 이 정부의 인식마저 같은 수준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 정부는 6·15공동선언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판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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