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아차가 노조에 굴복하면 타임오프 끝장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가 파업 등 쟁의행위 찬반을 묻는 조합원 투표를 24, 25일 실시한다. 이 노조는 14일 임시 대의원대회 결의를 거쳐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내고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올해도 파업을 강행하면 ‘20년 연속 파업’의 불명예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번 쟁의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원 문제가 쟁점이다. 기아차 노조는 다음 달 1일 개정 노조법이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현재 181명인 전임자를 18명으로 줄여야 한다. 노조는 개정법에 정면으로 맞서 현행 전임자 수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정부가 타임오프제(유임금 근로시간 면제제도) 위반 행위를 엄벌하겠다고 밝힌 마당에 타임오프 적용 대상이 아닌 기존 전임자까지 보장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회사 측은 “불법을 강요하는 노조 요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교섭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기아차 노조가 사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전임자 급여 문제를 놓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서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는 기아차 노동 쟁의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타임오프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보고 있다. 노사 대표들은 작년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타임오프제의 시행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힘든 협상과정을 거쳐 개정한 법 시행을 불과 열흘 남짓 앞두고 기아차 노사가 노동계와 재계를 대표해 싸움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기아차는 법에 정해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을 준수하고 정부가 고시한 타임오프 기준대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기아차가 노조에 굴복해 법과 고시에 규정된 기준 이상으로 전임자 임금을 지원하면 전임자 임금 금지와 타임오프제는 시행도 해보지 못한 채 물 건너가기 쉽다. 기아차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기업들도 노조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게 되고, 타임오프제 자체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크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타임오프제의 시행은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왜곡된 노동운동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다. 법 제정 13년 만에 시행되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법 자체가 무력화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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