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홍규]두려움이 혁신과 도약을 낳는다

  • Array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복잡성 커지는 불확실한 기업 환경
기업가정신 돋우는 ‘넛지 정책’을

세계 기업의 평균수명이 15년 전후라 한다. 기업 중 80%가 30년 이내에 사라진다는 분석도 있다. 케빈 케네디는 ‘100년 기업의 조건’에서 기업의 단명 원인이 성장 발전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복잡성 때문이라 했다. 최근 IBM이 내놓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연구결과 또한 CEO들이 복잡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한다.

CEO들이 처한 환경을 보면 정말 밤잠을 못 이룰 만하다. 그들은 고도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 제품은 기술 집약화되고 기업은 상호 연계되어 있으며 시장에는 수많은 경쟁기업의 사활을 건 각축전이 벌어지고 소비자들은 똑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같이 서로 다른 기술과 산업과 시장이 결합하는 컨버전스 현상이 보편화되고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이 기존의 사업영역을 위협한다.

불확실성 또한 CEO를 괴롭히는 요소다. 제품 수명이 짧아지면서 투자회수 가능기간도 짧아지니 사업 위험성은 그만큼 커졌다. 게임규칙 자체가 변하는 와해적 혁신이 많아지니 미래는 더 불확실해졌다. 금융시장은 호황(boom)과 파국(bust)을 반복하고 실물시장 또한 변동성이 커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아무리 여건이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해도 경제는 기업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들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첫째, 기회를 인지하는 능력을 가졌다. 기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불확실함을 꿰뚫어 볼 남다른 통찰력이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의 제품에는 소비자의 숨은 욕구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 반영되어 있다.

둘째, 기업가는 도전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도전이 없이는 혁신과 도약을 이룰 수 없다. 펩시를 재도약시킨 로저 엔리코 회장은 잘못된 일을 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술도 없이 반도체산업에 뛰어든 이병철, 조선소도 없이 선박 수주를 받았던 정주영. 피터 드러커가 높이 산 한국의 기업가였다.

자본주의는 혁신과 도전의 기업가 정신을 먹고 자란다. 사회주의가 실패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이 정신을 말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과 도전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는 일류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현재 지배하는 안전한 시장을 놓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장악했던 코닥은 디지털 촬영 기술을 최초로 발명하고도 사업화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성공과 실패의 담벼락 위를 걸어야 하는 것이 기업의 운명이다. 세계일류 기업이라도 두려워 그 위에 주저앉는다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경제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게 하는 것도 바로 두려움이 곳곳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창업의 열기는 식었고. 투자자금은 안전한 곳만 찾는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점은 지혜로운 도전정신이다. 지혜로우려면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두려움은 마음의 혼란을 만든다. 두려움은 기회는 작게, 위험은 크게 보이게 한다. 지혜로우려면 또한 호흡이 길어야 한다. 호흡이 짧으면 과욕이 커지고 무모한 대박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잡스는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과 직감을 따라갈 용기를 가지라고.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이라 했다. 기업가의 임무는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가의 도전을 고취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성장률에 매달리기에 앞서 정책적 넛지(nudge)를 찾아내려는 정부의 노력이 아쉬워 보이는 때다.

이홍규 KAIST IT경영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