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모두가 알겠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한다. 한민족과 동해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잘 표현한 가사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생각하는 동해는 울릉도나 독도까지다. 하지만 동해는 생각보다 훨씬 큰 바다이다. 면적이 남북을 합친 한반도의 다섯 배와 맞먹는다. 평균 수심은 1550m 정도이지만 동해의 북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 분지에서는 최대 수심이 4000m까지 이른다.
미국 해군연구국(ONR)은 800만 달러에 이르는 연구비를 마련하고 동해 관련 연구계획서를 공모에 부쳤다.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이에 따라 1999년에는 크림스II(CREAMS II)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해양조사선이 1년간 동해를 구석구석 조사했다. 왜 이렇게 미국이 동해 연구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연구프로그램을 수행했을까.
크림스(CREAMS)는 ‘Circulation Research of East Asian Marginal Seas’의 약자로 1993년부터 수년 동안 한국 일본 러시아의 해양학자들이 수행했던 동해탐사 프로젝트다. 이 조사는 정치적 장애를 극복하고 동해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해양조사를 수행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동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로는 70여 년 전 일본인 우다 교수의 조사를 꼽는다. 1년에 걸쳐 선박 60여 척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동해는 수백 m 아래로 내려가면 어디에서나 섭씨 0도 정도로 매우 차며 산소를 풍부하게 함유한 바닷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바닷물에 ‘동해 고유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이 6·25전쟁에 휘말려 있던 1950년에는 소련 학자들이 서북태평양 연구의 일부로 동해를 조사했다. 이후 동해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없었다. 크림스 조사는 우다 교수의 연구 이후 무려 60여 년 만의, 동해에 대한 대대적인 종합 조사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해양학계에서 동해는 최근의 기후변화와 관련되어 급변하는 바다의 대표적인 대명사가 되었다. 2008년 발표한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4차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야기되는 바다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동해를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인용했다. 북태평양해양과학기구(PICES) 역시 동해 연구를 중요 연구과제로 추천했다.
한국은 대조적이었다. 동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에 정부는 조금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토해양부(전 해양수산부)가 ‘동해를 과학으로 지킨다’는 목표하에 동해 전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과제(EAST-I)에 장기적인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지금까지 5년 동안 예산을 뒷받침했다. 이를 통하여 급변하는 동해 연구를 한국이 선도하는 기반을 확립하게 됐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과학자가 발표하는 동해 관련 연구논문에서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하는 사례가 최근 들어 급증한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바다는 경제력과 군사력만이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도 지킬 수 있다. EAST-I에서 수행하는 연구로 동해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진단한 결과는 동해의 과학적 경영에 큰 도움을 준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해양 문제, 동해 문제, 독도 문제에도 예외가 아니다. 바다를 우리의 자산으로 만들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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