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요즈음 국회를 보면서 버나드 쇼의 이 묘비명이 생각났다. 지난해 9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야간집회에 대해서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을 규정해온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 조항에서는 야간을 ‘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까지’로 정하고 있는데, 사실 애매하고 포괄적인 표현이었다. 구체적 시간을 명시하는 등 해당 조항을 더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개정을 했어야 할 국회가 우물쭈물하다가 시한인 2010년 6월 30일을 넘겨버렸다. 결과적으로 야간집회에 관한 법률은 정지됐고, 야간집회는 제한 없이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벌써 야간집회 신청이 봇물 터지듯 이뤄진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야간집회 신청 건수가 그전의 86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다간 도심이 밤마다 시위대로 넘쳐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기라도 하면 인도의 통행은 얼마나 복잡해질 것이고, 도로의 혼잡은 얼마나 심해질까. 도심의 상인들이 영업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서경진 변호사가 최근 12년간 집회·시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야간에 열리는 집회가 불법 폭력화하는 확률은 주간에 열리는 집회보다 29배나 높았다고 한다. 리서치 앤 리서치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4%는 야간집회가 불법·폭력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고 본 응답자는 16.0%였다.
익명성은 사람을 용감하게도, 무모하게도 만든다. 어둠 속에서의 시위는 참가자들의 익명성을 높여 법을 넘어서는 행동을 쉽게 유발한다. 경찰이 불법 행위자를 적발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불법 폭력의 가능성을 더욱 부추긴다. 하루빨리 국회가 야간집회에 관한 개선안을 내놔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시법 제10조가 있었던 이유는 헌법 제37조 때문이었다. 이 조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가 필요하지만 야간집회의 폭력화를 염려하는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을 보면서 한국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도심의 밤거리를 걸어 다녀도 안전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마저도 옛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야간 시위가 잦은 도심은 차츰 데이트 코스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기댈 것은 시민의 양식이다. 시위를 하는 사람과, 일반 시민 모두에게 시위는 할 수 있지만 법은 철저히 지킨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법을 어기고 질서를 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가 법을 어길 때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시위대 속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시위를 하는 사람은 최소한 심야 시간대의 시위라도 자제해야 한다. 정상적인 목적이라면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시위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시위대로 인해 통행에 피해를 보면 적극적으로 항의를 표시하자. 상인들이 영업에 피해를 봤으면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해야 한다. 염려만 하며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소수의 횡포에 휘둘리고 만다. 법이 사라진 공백이 양심과 애국심과 용기로 채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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