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는 자신의 배에 오너스룸(Owner's Room)을 만들어 놓고 자주 승선했다고 한다. 오너스룸은 선주를 위해 침실 거실 화장실 등을 갖춘 공간으로 선주가 10년에 한 번 타든, 영원히 타지 않든 항상 선주를 위해 비워 놓고 깨끗이 청소해 놓는 것이 관례다. 대규모 선사들은 보통 수백 척의 배를 운영하기 때문에 선주는 이 배들을 모두 한 번씩 타보기도 어렵다.
배를 좋아했던 오나시스는 배에 그랜드피아노까지 갖춰 놓고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배 위에서 파티를 한다고 하면 호화스러운 장면만 떠오를지 모르지만 배를 타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최근 평택항에서 만난 한 선장은 4000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4000개가 들어가는 크기)급 컨테이너선을 타고 한 달 전 미국 뉴욕을 떠나 파나마를 거쳐 부산항에 잠시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다시 중국 칭다오로 떠날 예정이라던 그는 6개월 배를 타고 2개월 쉬고 하는 생활을 30년이나 해왔다.
그가 타고 다니는 배에는 도서관 탁구장 노래방 목욕탕 등이 있지만 아무래도 운동량이 부족해 배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을 한다고 했다. 젊은 선원들은 아가씨를 만날 기회가 없어 결혼이 늦어진다는 것. 외로운 바다 위 갑판에서 술을 마시다 파도에 휩쓸려간 사람 이야기, 운 좋게 커다란 거북의 등에 떨어져 살아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뱃사람들에게 전해져 온다.
그런데 이처럼 거친 파도와 싸우며 바다를 누비는 장보고의 후예들, 한국 1, 2위 해운업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지휘하는 경영자는 공교롭게도 둘 다 여자다.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은 2003년부터, 한진해운의 최은영 회장은 2006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왔다. 두 사람 모두 남편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기업을 이어받기 전에는 평범한 주부였다.
수년간 남편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가업을 이어온 이들은 최근 들어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 회장은 임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보살피는 섬세한 경영으로 유명했으나 최근엔 세계 각국의 고객사와 선주들을 직접 만나며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을 시작했다. 지난달 23일엔 국내 해운사상 처음으로 1만 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을 인수해 명명식(命名式)을 가졌다.
현 회장은 최근 해외 해운전문지에서 선정한 세계 해운업계 파워 18위에 올랐다. 2002년 유동성 위기로 부산의 터미널을 매각한 지 8년 만에 지난달 22일 부산신항터미널 개장식을 여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뚝심 있는 경영을 펼치고 있다.
한국 근대 해운의 시초를 1950년 대한해운공사 발족으로 본다면 해운업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60년 사상 최악이라 할 만큼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이 때문에 한진해운은 지난해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고 현대그룹도 현재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다행히 올해 들어 경기가 회복되면서 해운업체들의 실적도 급속히 좋아지고 있다.
원자재와 화물, 가스 등을 실어 나르는 해운업은 국제무역과 나라 경제에 큰 기여를 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더구나 한국은 중국 일본 독일 등과 더불어 세계 6위의 해운 강국이다. 한국 해운업을 이끄는 두 여제(女帝)와 모든 선원에게 신의 축복과 가호가 깃드소서!(배의 명명식을 할 때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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