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재윤]‘학생조례’ 속 혼동된 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경기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지난해부터 있었는데 금년 들어서 서울시교육청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은 총 5장 46개 조항인데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의 배경은 그동안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겪은 학교폭력, 학생생활에 대한 과잉규제, 비자발적이고 무리한 강제적 학습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이를 조례라는 법적 형식으로 규제하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입신출세를 보장받는 특정 대학이나 학벌을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엄연히 존재해 학생이 예전과 다름없이 힘겨운 학교생활을 하므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법적 대응으로서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조례를 제정해서라도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확산되는 데 대해 경계의 목소리도 크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의 조례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미칠지 모르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관계가 중요한 교육의 장에서 법적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벌어질 인간관계의 파탄 문제, 학교경영과 교육정책에 대한 학생의 참여 보장이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반대론의 근거이다.

어떤 법령을 제정할 때 예상되는 효과나 부작용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도 학교교육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 법에 대한 전문적 연구 분야인 교육법학적 견지에서 검토해야 하는데 다음 몇 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학생의 권리 보장에서 ‘인권’과 ‘교육상의 권리’를 구별해야 한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학생이 가져야 할 기본권이며 교육상의 권리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갖는 권리이므로 서로 다르다. 보편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인권과 달리 교육상의 권리는 전문가의 교육활동과 관련되므로 다소 전문기술적인 측면이 있다. 따라서 교수학습 활동과 교육정책을 고려하면서 권리를 인정하거나 규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안된 학생인권조례안은 두 종류의 권리를 세심하게 구별하지 않고 있다. 인권과 교육상의 권리를 모두 담기 위해서는 인권 및 헌법 이론뿐만 아니라 교육학과 교육법학 이론도 중요하다.

둘째, 인권이 아니라 교육상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규정할 때 특히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다소 다른 내용을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성장발달과 교수학습 활동은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조례라는 입법형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은 아직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 이는 우리 교육의 사정상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다. 따라서 조례 제정보다 더 중요한 점은 아동권리 협약과 국내법, 특히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등 법률 수준의 개선을 도모하는 일이다. 조례는 그러한 기반 위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 확산일로에 있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은 필요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라도 내용과 형식 면에서 세심한 검토와 신중한 처리가 요망된다. 의욕만 앞세워서 만들기보다는 차분하게 토론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재윤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