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보릿고개에서 벗어난 건 1971년 본격 보급한 통일벼 덕분이다. 통일벼는 수확량이 일반 벼보다 40% 많았다. 박정희
정부는 쌀 자급에 성공하자 1974년 매주 두 차례의 무미일(無米日·분식일)을 폐지하고 14년 만에 쌀 막걸리 제조를 허용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136kg)까지는 매년 늘어나다가 1984년(130kg) 이후 감소했다. 명절이나 생일에나
흰쌀밥을 먹을 수 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남아도는 쌀이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면서 쌀 소비가
줄어 지난해 쌀 소비량은 1인당 74kg에 불과하다. 올해 농사 후 쌀 재고는 140만 t으로 적정량 72만 t의 약 2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공공비축 및 쌀값 떠받치기 용도로 쌀을 매입한 대금이 1조3000억 원이 넘는다. 사들인 쌀을
보관하는 데 570억 원이 들었다. 보관할 창고도 부족하다. 정부는 쌀을 주정 원료로 활용하고 쌀 음식을 다양하게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쌀 소비가 크게 늘지는 않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6일 연간 36만 t의 묵은쌀을 가축 사료로
쓰는 방안을 내놓았다. 재정 손실이 줄어들고 사료용 옥수수 수입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일본은 1999년 쌀 시장을 개방할 때
수확 후 2년 넘은 쌀은 가공용, 3년 넘은 쌀은 사료용으로 처분할 수 있게 했다. 6년 전부터는 사료용 쌀 품종을 개발해 ‘쌀
돼지’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도 못 먹던 쌀을 소 돼지에게 먹인다니” 하는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탈북시인 장진성이 쓴 시에는 ‘우리의 밥은/쌀밥이 아니다/나무다/나무껍질이다/우리의
밥은/산에서 자란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매년 춘궁기마다 북한 주민이 산으로 들로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기러 다니는 처참한
현실이 안타깝다. 민주당은 사료화 방안을 즉각 철회하고 대북 지원을 재개하라고 주장했지만 천안함을 폭침(爆沈)시켜 놓고 시치미를
떼는 북한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쌀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민에게 쌀밥을 먹이고 싶다”는 김일성의 유훈(遺訓)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김정일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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