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 전 총리의 ‘특권 피의자’ 행태, 법정 심판 받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2일 03시 00분


뇌물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이와 별도로 9억7000여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다시 불구속 기소됐다. 그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2007년 3월부터 9월까지 현금 4억8000만 원과 32만7500달러 및 1억 원짜리 수표를 건설업자한테서 직접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전 총리는 5만 달러 사건 수사 때 검찰 소환을 거부하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출석했지만 진술거부권을 행사했고 재판에서도 검찰 측 신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이번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소환에 불응한 채 항의 농성으로 맞섰다. ‘특권 피의자’이기라도 한 듯한 태도다. 일반 국민은 고소만 당해도 검찰이나 경찰에 소환돼 꼼짝 없이 조사를 받는다. 한 전 총리와 같은 식으로 검찰 수사 및 재판에 대응하는 것이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데 유리하다고 본다면 누가 법절차를 준수하겠는가.

한 전 총리는 장관 두 번에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보면 공직자로서의 양식과 윤리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총리 공관에서 인사 청탁과 관련된 법정관리 기업 사장은 점심에, 이번에 불법 정치자금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건설업자는 저녁에 따로 불러 국민 세금으로 식사 대접을 했다. 공인(公人)의식이 한심한 지경이다.

장관 시절 그는 평일 근무시간에 업체 사장과 함께 골프숍에 가 최고급 골프채 세트를 선물로 받은 의혹이 있다. 휴가 때는 그 사장이 예약해준 골프장에서 동생 부부와 함께 라운딩을 즐겼다. 공인 중의 공인인 그는 검찰이 수사 중인 비리 혐의에 대해 보도한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공인에 대한 수사와 재판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보도해 국민에게 알리는 건 언론의 책무다. 그럼에도 한 전 총리는 후속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에서인지 연거푸 소송을 냈다.

한 전 총리는 “정치보복” “표적수사” 운운하며 검찰 수사를 기피했지만 현재 그의 정치적 위상이 권력의 보복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설사 검찰이 보복수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법정 방어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 한 전 총리가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더라면 서울시장이 비리혐의로 법정에 드나들다가 보궐선거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비리 혐의를 정치탄압으로 포장하는 행태가 사라져야 법질서가 바로 서고 정치도 한 계단 격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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