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협(政協)위원인 한 학자가 최근 이같이 주장했다. 베이징(北京) 교외의 저우커우뎬(周口店)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에 새 3마리와 태양 무늬가 있는 걸로 보아 당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철학적 사고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부호에 가까운 그림 네 개로 ‘3만 년 철학사’라…. 중국인의 과감한 스케일이 나타나는 듯하지만 이는 이미 중국 내에서 제동이 걸렸다. 베이징대의 한 교수가 ‘(원시종교를) 확대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것이다.
저우커우뎬이라면 가본 일은 없지만 낯이 익다. 지난해 영국 체재 중 시청한 BBC 다큐멘터리 ‘인류의 놀라운 여정’에서 인류학자 앨리스 로버츠 박사가 저우커우뎬을 찾았다. 50만 년 전의 호모에렉투스 화석과 3만 년 전의 호모사피엔스(현생인류) 화석이 공존하는 이곳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로버츠 박사는 “중국에서 학생들은 중국인이 다른 인류와 다른 독자(獨自)의 기원을 갖고 있다고 배운다. 그 주장을 알아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를 맞은 중국과학원 우신즈(吳新智) 원사는 이곳에서 나온 호모에렉투스 화석과 호모사피엔스 화석을 들어 보이며 “두개골의 정면이 넓고 형태가 닮았으니 중국의 현생인류는 저우커우뎬 호모에렉투스의 후손”이라고 설명했다. 로버츠 박사는 이런 주장을 간단히 거부했다. “두 화석의 차이는 너무 크고, 중국과 다른 지역의 현생인류 두개골 차이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한쪽의 주장이 옳음을 단언할 식견은 없다. 그러나 세계 학계 분위기가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을 지지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음은 명백하다. DNA 분석으로 진화적 특징의 분지(分枝) 연대까지 대략 계산이 가능해진 점도 이 같은 경향에 한몫한다.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도 최근 저서 ‘지상 최대의 쇼’에서 인류의 다(多)지역 기원론을 ‘설득력을 잃고 있는 학설’로 꼽았다.
그러나 BBC 다큐멘터리에서 자극을 받은 것일까. 지난해 10월 중국은 베이징에서 ‘베이징원인 발견 80년 학술대회’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기조연설부터 중국은 로버츠 박사를 안내했던 우 원사 등 다지역 기원론을 주장하는 학자 3명을 내세웠다. 대회를 취재한 동아일보 기자는 “기조연설 이후 영국 학자가 아프리카 단일 기원론을 옹호하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자 중국 학자들이 일제히 반박 공세를 펼쳤다”고 전했다. 영국 학자의 재반론 중에도 중국 학자들은 반박성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박희현 한국고고학회 회장은 “중국이 세계 고고학계의 흐름을 자국 중심으로 바꾸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과학적 논쟁은 학자들이 증거와 논박을 통해 풀어갈 일이다. 그럼에도 염려를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영토에서 나온 화석을 통해 ‘독자적 진화 역사’를 주장한다면 서구인의 관점에서 그들과 명백히 닮은 한국 일본 몽골인 등은 ‘화이(華夷)론’이 말해온 대로 변방의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만에 하나 객관성이 생명인 과학에서 ‘대국의 권위로 강력히 주장하면 힘이 실린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사관(史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역사 문제에서야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미 중국은 올해 에너지 소비량에서 미국을 추월한 대국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자신의 몫을 정당하게 주장할 날이 머지않다. 힘만큼 존경받는 대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자부심만큼이나 겸허함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만큼이나 이웃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상 숱한 사상과 지식의 원천이었던 중국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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