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기 성남시 구도심 재개발사업을 비롯해 전국 120여 곳의 주택사업을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경제성이 낮은 사업에서 손을 떼려는 것이다. LH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가 110조 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이자를 물어야 하는 금융성 부채만 75조 원으로 하루 이자가 84억 원꼴이다. 지금 추세라면 2014년에는 총부채가 2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이 떠안을 공기업의 부채는 빨리 정리할수록 좋다.
LH가 빚더미에 오른 것은 국민임대주택, 세종시,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 국책사업을 떠안은 탓이 크다. 역대 정부는 신도시 건설 같은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앞세웠다. 이들 공기업은 국유지 등을 활용해 싼값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고 분양도 잘돼 ‘정부 덕에 땅장사, 집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역대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이 누적되면서 회사 재정이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
재정의 난맥상을 보이는 공기업은 LH만이 아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86개 공공기관 가운데 부채가 많은 25개 기관의 금융성 부채는 지난해 말 181조 원에 이른다. 금융성 부채가 10조 원이 넘는 곳이 LH와 한국전력공사(22조 원) 한국도로공사(20조 원)를 포함해 5개사에 이른다. 국내 공기업 부채는 국가적인 재정위기를 불러오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어 외국 신용평가회사들도 주시하고 있다.
LH가 일부 사업을 포기하는 자구 노력에 나서더라도 정부가 또 다른 정책사업을 떠안기면 구조조정 효과는 사라진다. 정부는 공기업을 동원해 무리한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관행부터 끊어야 한다. LH도 그동안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를 믿고 방만하게 사업을 벌여온 점을 반성하고 자체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LH의 사업 포기는 사업 관련 주민에게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정부와 LH가 키운 ‘부채 재앙’의 뒤처리 일부를 주민이 떠안은 꼴이다. LH는 주민과 부동산시장의 충격을 가급적 줄이고 향후 주택공급 차질을 최소화하는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 부채가 많은 다른 공기업들도 사업 중단 같은 충격 요법에 앞서 자체 구조조정에 매진하는 것이 옳다. 이번 충격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공기업 정책 실패와 공기업의 방만 경영에 있다. 이런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는 공기업 관리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