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창혁]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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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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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카키스의 선조는 이민선을 타고 왔고
나의 선조는 노예선을 타고 이 나라에 왔습니다.
그의 부모는 의사였고, 교사였으나
나의 부모는 하인이었고, 미용사였고, 잡역부였습니다.
그는 법학을, 나는 신학을 전공했으며,
나의 검은 피부와 그의 흰 피부가 다르며,
우리 둘 사이엔 인종, 종교, 지역의 차이
그리고 경험과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수(精髓)는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가 됐다는 것입니다.’

1988년 7월 19일(현지 시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전당대회. 제시 잭슨의 연설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멜팅폿(Melting Pot), 바로 그 현장이었다. 그는 절규하듯 외쳤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십시오. 저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날고 있습니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이나 크기 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입니다.”

1988년 ‘멜팅폿’ 외친 잭슨의 연설

경선 결과, 잭슨은 마이클 듀카키스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미국은 물론이고 태평양 너머 코리아의 지식인에게도 깊은 각인을 남겼다. 두 달 뒤, 59세의 리영희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글에서 “좌가 뭐고, 우가 뭔고? 인간보다 못한 새들조차 좌익(左翼)과 우익(右翼)을 가지고 날지 않는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원리 아닐까?”라고 묻는다.

짧은 지식이지만, 인류 역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선과 악, 경험론과 관념론, 이(理)와 기(氣), 유물론과 유심론, 테제와 안티테제…. 한쪽 날개가 지나치게 커지면 다른 쪽 날개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 종국엔 새가 추락하고, 문명이 암흑기로 뒷걸음질치고 마는 게 역사의 자연법칙 아닐까?

동아일보의 특별기획 시리즈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는 그래서, 그저 그렇고 그런 담론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험신호다. 생존의 자연법칙이 깨질지 모른다는 다급한 사이렌이다. 물이 새는 제방을 막기 위해 맨주먹을 밀어 넣는 네덜란드 소년의 안간힘이다.

양극의 성장통 극복할 지혜는?

그러나,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사시(社是)로서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한 동아일보이기에 슬픔이 깊은 만큼 자책도 크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길거리에 나가 피켓을 든 이유도 그런 회오(悔悟)와 책임감 때문이다.

아직도 세상만사를 좌와 우의 프레임, 오직 그것만으로 나누고 찢어발기는 ‘양극의 병리학’이 득세하고 있다. 대통령의 친(親)서민 중도실용 노력조차 양극 프레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 걸 보면 그 병은 천형(天刑)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느 날 좌가 모두 없어지고 우만 남는다면? 우가 죄다 없어지고 좌만 남는다면? 아마 서인(西人)과 붕당싸움을 벌이던 동인(東人)이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으로 갈리고, 그 남인이 다시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나뉘어 권력싸움에 골몰했듯이 청우와 탁우, 청좌와 탁좌의 망국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그래도 좋다. 왕조시대가 아니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반(反)지성적이고 저급한 좌우, 보혁 놀음도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쯤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말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평화를 주워섬기면서 뒤로는 제 잇속을 챙기는 ‘철밥통 보수’, ‘철밥통 진보’의 준동만은 경계해야 한다. 양식(良識)과 법치로 양극의 이데올로기 장사꾼들만 제어해낸다면 좌든, 우든, 보수든, 진보든 건강한 공존의 토양(Common Ground)을 다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아메리칸 이글만 그런 게 아니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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