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우]계파를 버려야 한나라당이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8일 03시 00분


새로 선출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는 당 쇄신의 첫 조치로 계파모임 해체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일각에는 ‘친이’ ‘친박’이라는 당내 계파가 오랫동안 정서적 이반상태에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일소될 수 없는 문제라는 회의적 평가가 있다. 계파문제를 직접 제기한 홍준표 의원이 예로 들었던 당내 모임의 당사자들은 모임의 정체성이 계파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계파를 없애는 일은 만만치 않으며, 옳고 그름의 규범적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계파가 정치에서 필연적이라는 인식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파벌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파벌이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때 파벌의 의미는 지금의 개념으로 본다면 정당에 가깝기는 하지만 특정 집단이 견제 없이 권력을 독점하면 전체에 손해를 끼친다고 우려해 시사점을 준다.

한나라당은 당내 파벌로 내홍을 겪었지만 정치를 독점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 친박과 친이의 당내 갈등이 심화하면서 언론에서 민주당의 존재감이 거의 없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를 보수 정부가 아니라고 보는 강경 보수 진영은 박근혜 의원 때문에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았다.

다수의 구성원이 있으면 내부에서 소집단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관건은 소집단이 배타적인지 그리고 구성원의 포괄적 이익을 보장하는지에 있다. 계파의 목적이 구성원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달 초 한나라당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노골적으로 친이와 친박의 성향을 드러냈다. 계파를 이용하면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친박계에서는 계파의 후보군 축소가 공개적으로 논의될 정도로 계파를 정당운영의 기본구도로 삼아 왔다. 따라서 지방선거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향후 녹록지 않은 정국을 예상해 볼 때 이번 한나라당 지도부의 계파일소 조치는 적절하다고 평가된다.

문제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 명실상부하게 이름 그대로 한나라당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있다. 성공의 관건은 규정에 의해 당내의 권력분배를 이룰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이제까지 정당의 대표적 가치인 공천뿐 아니라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마저도 계파의 몫을 고려할 때가 많았다. 지금부터 가치의 분배가 공개된 절차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래서 계파가 그 구성원에게 배타적 혜택을 줄 수 없다면 구성원은 계파에 충성을 바치지 않게 된다. 당내 소모임은 다양한 관심에 따라 이합집산하게 될 것이다. 모임의 목적이 구성원의 포괄적 이익보호가 아니라 제한적 영역에서의 서비스 제공에 그치게 된다.

이러한 계파 개혁의 방향을 한나라당 지도부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계파를 없애려는 시도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계파구도 속에 현재 지위를 누리는 지도부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계파를 없애려면 지도부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향후 당내 권력과 가치가 공정하게 배분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계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또다시 국민들로부터 ‘한나라당이 그렇지 뭐’라는 냉소적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번 시도의 성공 여부가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견해는 과장이 아니다. 손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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