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이 대독한 2010 제주 하계포럼 개회사에서 “나라가 올바르게 나아가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에게 국가적 위기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국민도 위기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세종시 같은 국가 중대사업이 당리당략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4대강 사업도 반대세력의 여론몰이로 혼선을 빚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조 회장의 발언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쏟아 놓는 상황에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통령은 어제 “전경련도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곤란하며 사회적 책임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기업들의 행태에 일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협력업체인 중견·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는 일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이 어렵게 일궈 놓은 영역에 뒤늦게 뛰어들어 이득을 챙기거나,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도용하는 사례도 있다. 일부 기업인의 도덕적 해이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투자 없이 혜택만 누리려는 행태도 잘못이다.
그렇더라도 최근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는 지나친 감이 있다. 대통령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기획재정부 장관, 지식경제부 장관, 방송통신위원장, 중소기업청장이 한목소리로 재계를 비판하고 검찰이 ‘기획수사’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경제계에서는 과거 좌파정권에서 기승을 부리던 포퓰리즘적 ‘대기업 때리기’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대기업을 마치 비리집단이라도 되는 양 몰아붙여 기업인의 사기를 꺾는 것은 이 정부가 요즘 유난히 강조하는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납세 고용 투자의 형태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그 기반 위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된다. 정부는 예측 가능한 정책과 법치주의를 통해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데 힘써야지 ‘군기잡기’ 식 위협으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 회장의 발언 중에는 겸허히 곱씹어볼 만한 내용도 많이 있다. 정부와 재계는 서로를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부터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