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돌과 최루탄에 고생은 많이 했지만 나는 이곳에서 희망의 불씨를 봤다. 팔레스타인 일부가 ‘비폭력 저항’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 식의 비폭력 저항이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는 데 있어 로켓포나 미사일보다 더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요르단강 서안의 빌린 지역에서 열린 시위는 바로 이 비폭력 방식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날 시위를 따라나서 직접 체험했다. 시위대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사람이었지만 이들 주장에 동조하는 유대인과 외국인도 일부 있었다. 이들은 구호를 복창하고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시위 초반은 마치 축제와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때 한 무리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최루가스로 응사했고 우리는 이내 흩어졌다. 시위대 중 일부는 달아나면서도 돌을 던지며 저항을 계속했다. 이 같은 모습은 ‘두들겨 맞더라도 곤봉을 막기 위해 손도 들지 않았던’ 간디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만약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지지 않거나 시위대 맨 앞줄에 평화주의자인 여성들을 내세운다고 상상해보자. 또 이들이 도로에 앉은 채 아무런 무기도 쓰지 않고 날아오는 최루가스를 맞거나 폭행을 당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광경은 단번에 전 세계에 TV로 중계될 것이다.
비폭력을 주장하는 팔레스타인의 무스타파 바르구티 박사는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간디의 그 유명한 1930년대 ‘소금의 행진’과 같은 자기만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개척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평화적 저항의 대표적 사례는 유대인 정착지구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었다. 또 가자 지구에서는 농민들이 이스라엘의 통행금지 구역에 항의하고자 총탄 세례를 각오하고 이 지역을 공개 행진한 적도 있다.
아직까지 마틴 루서 킹에게 필적하는 팔레스타인 운동가는 없지만 굳이 뽑으라면 아예드 모라르가 유력한 후보다. 머리가 약간 벗어진 온화한 성격의 이 운동가는 이미 수년 전 서안의 부드루스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안전펜스 설치에 항의하는 집회를 주도하며 비폭력 시위의 모범을 보인 바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치고는 언론감각도 탁월한 편이다. 모라르는 “평화적 저항이라면 여론전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언론은 흔히 팔레스타인이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폭력 방식을 도입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일 뿐이고 이스라엘 자체가 아닌 이들의 ‘점령’ 행위를 반대한다는 점을 부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시위는 남성 위주지만 부드루스에선 여성이 중심역할을 한다. 예전에 이곳에서 시위를 주도했던 모라르의 딸은 이스라엘군의 불도저를 단신으로 막았다. 불도저는 결국 물러섰고 그녀는 다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폭탄테러범을 다루는 데는 능숙하지만 평화적인 팔레스타인 여성 앞에선 당황스러워했다. 그들은 폭력진압을 견뎌냈고 결국 이스라엘은 이에 항복해 안전펜스를 우회 설치하기로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과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평화적 저항운동을 이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들의 첫째 과제는 폭력시위를 삼가고 여성을 집회의 맨 앞자리로 끌어내는 일이다. 이 같은 풀뿌리 운동이야말로 변화를 위한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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