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성구]방치된 病은 공공의 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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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30일 03시 00분


정부가 지정한 희귀 난치성 질환이 600개를 넘었다. 흔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질환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희귀 난치성 질환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치료 방법이 있음에도 질환을 몰라 치료시기를 놓치면, 환자 개인뿐 아니라 가족이 고통을 겪고 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친다.

인식 부족이 치료 지연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호흡기 질환이 바로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이다. 전 세계 사망 원인 4위, 국내 사망 원인 7위를 차지하지만 인지도는 1%에도 못 미친다. 흡연이 대부분의 원인이라 장기 흡연자라면 누구나 위험군이 될 수 있는 흔한 질환이다. 실제 20년 넘게 하루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운 사람에서 COPD가 많이 나타난다.

문제는 대부분의 흡연자가 질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기침이나 가래, 숨가쁨은 흡연자라면 흔히 겪으므로 이런 증상만으로 질환을 판별하기 쉽지 않다. COPD는 5∼10분만 투자하면 폐기능 검사로 쉽게 진단할 수 있지만 낮은 인지도 탓에 위험군과 환자를 진단으로 유도하기 어렵다.

COPD 등 폐질환 예방 및 치료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물론 금연이다. COPD 예방과 치료에서 금연은 필수불가결하다. 흡연의 위해를 알리는 홍보 활동과 규제에도 불구하고 국내 흡연율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8%를 크게 웃돈다.

흡연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와 담배회사 마케팅의 영향으로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율은 급증하는 추세이다. 성인 남성의 흡연율도 최근 상승세로 다시 돌아섰다. COPD 등 폐질환 예비군은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인 셈이다.

학계도 금연의 강조만으로는 질환 예방과 치료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지속적 대국민 인식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정부 역시 흡연 관련 규제를 강화해 국민 건강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담뱃갑 그림 삽입 등의 내용을 포함한 금연법이 국회에 2007년에 발의된 뒤 계류 중이다. 환자와 흡연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충격요법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발이 묶인 상태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백 마디 경고 문구보다 하나의 그림이 흡연자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담뱃갑 그림 삽입은 금연 의지 고취는 물론 인지도가 낮은 질환을 알리는 또 다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해외에서 실효를 거둔 정책으로 시각적 메시지가 주는 경고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경고 그림에 흡연으로 인해 발생되는 폐암, 구강암 등 잘 알려진 질환과 COPD 등 알려지지 않은 폐질환 이미지를 포함시켜야 한다. 흡연자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금연 의지와 질환 인지도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본다. 흡연의 위험성을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알려야 가능한 일이다.

질환을 예방하는 일만큼 질환을 적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치료하는 일도 중요하다. 흔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질환의 치료를 개인에게만 맡겨놓으면 안 된다. 환자의 조기 검진과 적극적 치료 의지를 고취하려면 의료진을 비롯해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병을 알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환자를 생각한다면 질환 알리기에 모두가 함께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점이다.

한성구 서울대 의대 교수 대한 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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